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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3 또다시 오랜만에 종로에 나갔다. 언젠가도 말했듯이 내가 종로에 나갔다는 것은 모임을 한다는 말이다. 역시 언젠가 또 말했듯이 종로는 우리의 아지트이고, 아지트라고 하면서 몇 년을 들락날락거렸지만 여전히 거기가 거긴 것 같은 길치인 나는 앞장서는 친구들 뒤만 강아지처럼(아니 늙은 어미 개인가...) 졸졸 따라다닌다. 당연히 친구가 길을 잘못 들어서면 무조건 나도 잘못 들어서는 것이다. 그뿐인가, 길 따위엔 관심도 없어서 뒤에서 다른 친구들과 수다 떨기 바쁘다. 그 수다라는 것이 전형적인 아줌마의 범위를 못 벗어나서 어머, 얘, 너 지난번보다 피부가 훨씬 좋아졌어. 이뻐졌다. 옷 어디서 샀어? 화장하는 법을 바꿨구나? 살찐 것.. 2006. 7. 8.
이렇게 난처할 수가... 이따금 각자의 사정에 의해서 금요일에 드리는 가정예배를 다른 요일로 바꾸는 경우가 있다. 지난주 목요일 저녁에 남녀 연합 속회 예배를 드리면서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이번 주에는 평소처럼 금요일 아침에 드리는 걸로 알고서 모처럼 아침 일찍 깨끗이 씻고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전화벨이 울리길 기다려도 전화벨은 잠잠했다. '또 예배 날짜 늦추고서 내게만 연락하지 않았구나.' 생각하고 평상시에 시간 보내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기회만 되면, 아니 기회가 되지 않아도, 때로 어떤 구실을 만들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곤 하는 예배인지라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 누가 날라리 신자 아니랄까 봐서. 다만 전화 연락을 미리 해주지 않은 점에 아주 조금, 병아리 눈물만큼 .. 2006. 6. 25.
계양산행 오늘은 남편과 둘이서 가까운 곳의 계양산에 올랐다. 큰 녀석은 어느덧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됐고, 작은 녀석은 며칠째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고 있어서 둘이서만 갔다. 사십 대 중반인데도 여전히 날씬하고 날렵한 남편의 뒷모습. 지난해 초여름에 하얀솔 님이 알려주신 족제비싸리가 참 많이 피어 있었다. 왜 족제비싸리일까? 꽃이 족제비의 꼬리를 닮았나? 족제비 꼬리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여우 꼬리라면 또 몰라도... 며느리밑씻개,라는 민망한 이름의 풀꽃도 더러더러 눈에 띈다. 남편은 또래의 남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전혀 숨차 하지 않으면서 산을 오른다. 나는 또래의 여자들과는 전혀 다르게 숨을 헐떡인다. 고개까지 까딱거리면서 숨차 하니 남편이 배를 잡고 웃더니 "고개는 .. 2006. 6. 6.
아까시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사진은 센포 님 블로그에서 한 장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 흔히 '아카시아'라고 부르던 나무의 명칭은 정확하게 '아까시' 나무라고 한다. 짜장면이 자장면인 것 처럼. 짜장면이라고 불러야 정말 짜장면 맛이 나는 것처럼, 아까시 나무도 아카시아라고 불러야 정말로 아카시아 꽃.. 2006. 5. 22.
따라 해보는 것들 愛야 님의 블로그에 갔더니 세세하게 이렇게 조목조목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이 올라왔길래 가져와봤다. 따라 해볼려고... 나는 산보다 바다를 사랑한다. 아주 많이 사랑하여 바라보기만 한다. 나는 산이나 바다나 다 사랑한다. 바라보는 것은 바라보는 대로, 그 속에 잠기면 잠기는 대로. 이 나.. 2006. 5. 21.
산길에서 어제 혼자서 뒷산에 올랐다. 산을 빙 둘러서 나있는 포장도로를 쉬엄쉬엄 느긋하게 오른다. 그래도 가파른 고개를 하나 넘으니 숨이 턱에 찬다. 저 멀리 송도 앞바다가 보이고, 아파트 건설현장도 보인다. 발아래로 부지기수인 무덤들도 보인다. 엄마는 함께 오를 때면 무덤을 보면서 언제나 무섭다고 하는데, 나는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무덤가에 돋아난 풀꽃들만 본다. 더 본다면 묘지가 얼마나 잘 가꾸어졌나, 하는 정도. 어느 무덤가에 핀 보랏빛의 제비꽃. 그 옆의 쌀알만 한 꽃마리들이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꽃마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비꽃 못지않게 아름답거늘 너무 작다 보니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은 제비꽃이다. 올해 처음 만나 본 '구슬붕이'이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아무리 머리를 이리 굴리고,.. 2006. 5. 15.
산이 연둣빛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은 연두도 가지가지 연두로 저만의 연둣빛을 뽐내지만 그래서 멀리서도 한눈에 저 나무는 무슨 나무인지 알아볼 수 있지만 한여름이 되면 모두 다 한결같이 진초록으로 짠 듯이 옷을 갈아입어서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모두가 한 덩어리 한 몸으로 보인다. 그러다 가을이면 저마다의 단풍빛으로 각자의 옷을 또 뽐낸다. 모두다 새순을 내놓는 중에도 늦도록 옷을 갈아입지 않던 내가 좋아하는 이태리포플러는 어느 아침 느닷없이 옷을 갈아입고 한순간에 멋쟁이가 되어서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했다. 역시 포플러야! 여름이면 반짝이는 햇살에 팔랑거리며 빛나겠지. 팔랑팔랑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귀염을 떨고, 보는 이의 눈도 시원하게 만들겠지. 우리 동네는 번화하지 않아서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2006. 5. 10.
거짓말 시인과 촌장이 부르는 '가시나무새'에서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어제도 거짓말, 오늘도 거짓말, 처음부터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난처한 입장을 모면하려고 둘러대다 보니 저절로 말이 이리저리 빙 돌아서 거짓말이 되었다. 둘러대고 보니 내가 듣기에도 썩 그럴 .. 2006. 3. 22.
애주가 나의 주량은 맥주 한 병, 소주 반 병, 양주 반 글라스, 막걸리 1리터짜리 한병, 동동주 넉 잔 정도이다. 그 정도 마시면 알딸딸하니 딱 좋다. 세상이 부드럽게 흘러가고, 모든 일이 다 잘되어가고 있다고 생각 들고, 맞은편에 앉은 신랑이 퍽 맘에 든다. 이 주량은 남편을 상대로 마셨을 때이고, 고무줄 주량인지 시시때때로 약간의 변동사항이 있다. 동창회 같은 데서나, 다른 모임에서 마시면 내 주량이 도대체 얼마인지 모르겠다. 원래, 누구 표현처럼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주의자여서 흐트러진 모습은 우선 내가 못 견뎌하므로 절대로 허튼짓을 할 정도로 취하지 않는다. 남편과 같이, 단둘이 마실 때만 적당히 취한다. 술은 연애 시절에 애인이던 남편으로부터 배웠다. 나는 스물다섯살이스물다섯.. 2006.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