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아무튼 제 솜씨는 아닙니다...>
또다시 오랜만에 종로에 나갔다. 언젠가도 말했듯이 내가 종로에 나갔다는 것은 모임을 한다는 말이다. 역시 언젠가 또 말했듯이 종로는 우리의 아지트이고, 아지트라고 하면서 몇 년을 들락날락거렸지만 여전히 거기가 거긴 것 같은 길치인 나는 앞장서는 친구들 뒤만 강아지처럼(아니 늙은 어미 개인가...) 졸졸 따라다닌다. 당연히 친구가 길을 잘못 들어서면 무조건 나도 잘못 들어서는 것이다. 그뿐인가, 길 따위엔 관심도 없어서 뒤에서 다른 친구들과 수다 떨기 바쁘다. 그 수다라는 것이 전형적인 아줌마의 범위를 못 벗어나서 어머, 얘, 너 지난번보다 피부가 훨씬 좋아졌어. 이뻐졌다. 옷 어디서 샀어? 화장하는 법을 바꿨구나? 살찐 것 같아......
문제는 친구들의 관심과 대화의 범위도 그 근처를 빙빙 도는지라 종로 3가의 그 붐비는 횡단보도를 사람 멀미 나 하면서(우리 동네는 역 앞의 횡단보도만 출퇴근시에만 잠시 붐비고, 평상시에는 고작 대여섯 명이 건너는 경우가 허다하고, 더러는 혼자서 건널 때도 있다. 종로는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00여 명 정도가 일제히 한꺼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 같다. 그러니 한적한 동네에 살던 나는 촌티를 팍팍 내면서 아, 사람 멀미나! 한다.) 건너는데 두 친구가 내게 그런다."야, **야, 너 왜 그렇게 말랐어? 너무 말랐다.""아니, 이게 뭐가 말랐어? 날씬하지? 나, 이거 66 짜리다. 그 동안엔 더러 77도 입었는데, 지난번 피부 알레르기 생겨서 열이 올랐다 내렸다 고생하면서 식욕이 떨어지더니 이렇게 빠졌다. 문제는 그게 나으니 식욕이 다시 당기는 거지.""야, 날씬한 게 아니라 너무 말랐다. 진짜 몸피가 하나도 없다."좋아서 마구마구 웃던 나."아니야. 이 옷 디자인이 더 날씬해 보여. 지난번에 다른 옷 입고 어떤 친구 만났더니 나더러 살 좀 빼라더라. 내가 28 입는다고 하는데도.""미쳤다......"하면서 두 친구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입을 안 다물고 있다."어떤 친구야? 데꼬 와. 손을 좀 봐주게. 우리나라는 적당한 몸매를 두고 자신들은 만날 살쪘다고 해서 문제라던데. 넌 정말 말랐다."그러면서 '말랐다'라고 아주 확정을 지었다.
문제는 내게 말랐다고 하는 그 두 친구가 좋게 말해서 몸집이 넉넉하고, 나쁘게 말하면 살짝 다이어트 좀 해야 할 판이고, 내게 살쪘다고 하는 그 친구는 자신의 몸집이 너무 홀쭉하다는 것은 모르고 자기를 기준 삼아 내게 살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 명이서 다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적당하고, 마른 친구는 마른 자신이 적당하고, 몸집이 넉넉한 친구 둘은 그들 자신이 적당?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다이어트해야 한다고 그들 스스로 말할 때도 있으므로. 단지 아줌마들이므로 그 정도의 몸매에 건강하기만 하면 그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하니까.
나머지 다른 친구 하나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지병 때문인지 갈수록 너무 살이 빠져서 배에 힘이 하나도 없다. 그 친구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할머니가 걷는 것 같다. 예전에 입던 옷들은 빠져 나간 살들 때문에 몸에 붙질 않고 벙벙해서 옷태가 전혀 나질 않는다. 거기다 몇 년 전에나 유행했음직한 디스코 바지라는 허리 부분 양쪽으로 다트 2개씩 넣어서 여유롭고 풍성하게 만든 바지이다. 요즘은 일 자 바지로 몸에 약간 피트 되는 듯한 바지를 입는데. 우리는 그 친구의 옷 입기에 대해서 코치를 하느라고 열을 올린다. 먼저 나, "야, **야, 너 오늘 집에 가거든 그 바지는 벗어서 당장 버려버려. 할머니 바지 같다."다른 친구 1, "야, **야, 너 그 신발이 뭐냐? 그거 할머니들이 신는 효도 신발이다. 젊은 여자가 그게 뭐야?"이 부분에서 갑자기 나를 보면서 "얘, 신발 이쁘다. 저런 거 사신어."지적당한 친구 나를 보면서
"그거 어디서 샀어? 얼마야?""이거? 홈쇼핑 카탈로그 보고. 8만 5천 원.""헉!""이거"헉!" 양가죽이야. 그리고 이런 거 한번 사면 못 신어도 5년은 신어. 야, 그리고 샌들 신을 때는 스타킹 안 신는 거야. 샌들에 스타킹 신는 것은 할머니들이나 그렇게 신어. 맨발에 신어야 신발 맵시가 나지. 맨발이 정 쑥스러우면 짧은 스타킹을 가지고 다니다가 어디 신발 벗고 들어갈 때만 얼른 신는 거야."그 친구가 재킷을 입고 왔는데 몸에 붙는 듯하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텐데 너무 헐렁하니까 어떻게 하다 보면 안이 다 들여다 보였다. 그걸 그냥 못 보아 넘긴 친구 1, "**야, 그 안에다 탑을 하나 받쳐 입어."나"야, 더워. 여름에 두 개씩 입으면 얼마나 더운데......""야, 그래도 너무 보이잖아.""야, 얘, 집에 가서 잠 못 자겠다. 그만하자."넷이서 마구 웃던 우리는 친구이니까, 자존심 상해하지 않을 것 아니까,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며 남 같으면 이런 얘기 해주지 않는다며 결론을 맺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제법 귀담아듣던데, 아무래도 너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기도 하다.
점심은 한 친구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아왔다며 유명한 칼국수 집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허름한 골목, 허름한 내부...... 나는 정말 먹고 싶은 의욕이 없는데, 그 친구가 자주 우려먹는 "이런 것도 사는 재미야. 먹어봐."에 넘어가서 먹었다. 결론은 다시는 그 친구가 검색을 해오지 않을 것을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리는 바이다. 언젠가는 천원짜리 해장국 밥 집이 유명하다고 해서 물어물어 찾아가서 종로로 마실 나오는 많은 할아버지들 틈에 끼여서 먹질 않았나, 또 티브이에서 봤다며 고등어구이로 유명한 먹자골목이 있다고 해서 고등어구이 백반을 먹질 않았나...... 아무튼 그런 집들은 유명세를 타서 그런지 줄 서서 기다렸다가 들어가서 제대로 된 서비스는 전혀 받을 수 없는 분위기에서 상상 밖으로 저렴한 음식값을 지불하고 나온다. 나는 깔끔한 맛이 없어서 별로인데, 친구는 그런 분위기를 퍽 즐긴다. 보기엔 여전히 새침데기 같이 생겨 가지고서 어울리지 않게...... 친구야, 다음번에는 제발 제대로 된 음식점에서 정갈한 음식을 먹어보자꾸나!
이어서 정해진 뻔한 순서는 인사동 나들이다. 서서히, 느리게 느리게, 만만디로 걸으면서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것이다. 철이 여름이어서인지 호떡 장사는 안 보인다. 그 대신 웬 옷 가게들이 그리 많이 들어섰나 모르겠다. 덕분에 쇼핑 좋아하는 여자들인 우리는 이 집 저 집을 그냥 못 지나친다. 물론 사이사이 박혀 있는 겔러리들도 그냥 지나치진 않는다. 어느 옷가게 앞에서 진열되어 있는 빨간색의 캡소매 티셔츠가 너무 예뻐서 들어가 가격을 물어보니 가격도 적당해서 냉큼 샀다. 내가 그 티셔츠 하나 사는 동안에 다른 친구 2는 여러 가지를 샀다. 사 가지고 나오니 어느 커피숖에서 다리도 쉬면서 화장실에 가서 나더러 옷을 입어보란다. 그럴 것까지야. 이곳에서 입어보지, 뭐. 탈의실에 가서 갈아입고 나왔더니 앞이 왜 그리 많이 파였을까. 놀랬더니 요즘은 다 그렇게 입는다면서 이쁘다고, 잘 어울린다고 친구와 점원들이 부추긴다. 원래 부추기면 나무 위라도 냉큼 올라가는 성질의 나인지라 상표 떼어달래서 입고 나왔다. 그 옷이 상당히 불편했다. 이조시대의 여인 같다는 평도 살짝 들었던 나인지라, 앞이 자꾸만 들여다 보이는 것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 계속 신경을 쓰다가 결국은 친구 2로부터 한소리 들었다."야, 볼 것도 없어. 뭐가 있어야 보지. 나 정도는 돼야 야한 거지. 그게 야한 거냐?"아휴~ 내가, 내가, 모 CF의 한 대사를 인사동에서 토씨 하나 안 틀리게 듣게 될 줄이야, 말이야, 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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