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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얘야, 손 좀 들거라!

by 눈부신햇살* 2006. 7. 11.

 

 

 

 

얼마 전에 올해 5학년이 된 요 녀석의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어서 학교에 다녀왔다.

집에서는 온갖 개구진 짓을 다하는 녀석이면서, 가정 통신란에는 의젓하고...... 어쩌고 저쩌고 평상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평이 실려온다. 그중에서 가장 싫은 말이 말수가 적고이다.

큰 녀석의 가정 통신란에도 어김없이 올라가 있던 그 말이니, 제발 작은 녀석의 가정 통신란에는 없기를 바랐는데,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3년인가를 아는 엄마의 딸래미와 한 반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꼭 한 학기를 회장(옛날 명칭 - 반장)을 했었는데, 일 년에 한두 번 학교에 얼굴을 내미는 나와 달리 학교의 자모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그 엄마는 녀석을 눈여겨보곤 하는지, 가끔씩 아들 녀석 얘기를 하곤 했다. 얼마나 의젓한지, 키는 또 얼마나 큰지, 이번에는 반에서 일등 했어요, 어떻게 가르쳐요?(반에서 일등은 딱 한번 했다.)

공개 수업하는 날, 엄마가 발표하지 않는 것 싫어한다는 것은 잘 알아서

"엄마 오니까 손 많이 들어야겠네?"

하면서 학교에 갔던 녀석이다. 내심 녀석이 좀 달라졌나, 하는 기대를 품고 학교에 갔다.

어디나 그렇지만 몇 시까지 오라고 하면 꼭 한 일이십 분 늦게 나타난다. 시간에 딱 대어서 갔는데도 엄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한산했다. 복도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더니 참말 이쁘고 곱고 참하게 생긴 처자 같은 선생님이 나오셔서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누구 어머니세요?"

"네, 안녕하세요. ㅇㅇㅇ 엄마예요."

한 십 분 쯤 늦춰서 하기로 해서 아직 시작 전이라고 했다.

 

수업은 국어였다. 표창장 받을 친구를 추천하는 법과 상장을 꾸미는 법, 수여하는 법을 가르쳤다. 7개의 분단이 있었고, 차례차례 분단별로 돌아가면서 발표를 시켰다.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손을 들고 호명하면 벌떡 일어나서 선생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자세로 "누가 발표하겠습니다."로 시작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발표를 했다. 이제나저제나 저 녀석이 손을 드나, 안 드나 만 유심히 쳐다보는데, 전혀 미동도 안 한다. 그런데 먼저 복도에서 인사를 나눴던 선생님의 배려인지

"이번엔 ㅇㅇㅇ이 한번 발표해볼래요?"

하고 지적했다. 녀석

"아니요."

하고 태연하게 앉아 있다.

"그러지 말고 한번 일어서서 읽어봐요."

녀석, 고개를 도리도리한다. 저것이 뭔 짓이라냐......

선생님 마구 웃으시더니

"절대 싫어요? 절대로 안 할 거예요?"

"네."

기가 막혀서......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표창장을 주는 순서에서 녀석에게 다른 친구가 준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주는 친구가 상장을 들고 읽고서 받는 친구에게 주면 그 친구는 일어서서 공손히 두 손으로 받는다였다. 드디어 아들 분단의 순서가 되었을 때, 그냥 앉아 있던 녀석, 상장을 다 읽자 뒤를 돌아보더니 상장을 획 낚아채갔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나 보다. 선생님 말씀하시기를

"상장을 받을 때 거만한 태도로 받으면 안 되겠지요?"

녀석은 그 말에 신경도 쓰질 않는다.

 

수업이 끝나고 녀석에게 다가갔더니 그래도 환히 웃는다.

"야, 도리도리! 너, 오늘은 발표 열심히 한다며? 근데 손을 들기는커녕 시켜도 안 한다고 도리도리를 해?'

"그게 말이야. 칭찬을 쓰라고 했는데, 암만 생각해도 칭찬거리가 없어서 비방을 썼단 말이야. 근데 그걸 읽어?"

"야, 표창장인데, 칭찬을 해야지."

"그게, 아무리 찾아도 칭찬할만한 게 없는데?"

....... 내가 졌다.

"공부만 잘하면 됐지. 발표까지 잘해야 돼?"

"니가 공부를 잘하긴 잘하는 거냐?"

"그럼, 반에서 2등이면 잘하는 거지."

어째, 따박따박 한마디도 지질 않고 대꾸하면서, 발표하라니까 웬 도리도리......

한 3일은 우려서 아이 아빠와 내가 놀려 먹었다.

"야, 도리도리, 이리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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