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0월이 가버렸다. 세월은 모터라도 달린 듯 바쁘게 바쁘게 내달린다.
일주일이 금방 지나고, 한 달이 후딱 지나고, 한 계절이 휙 지나가고 나면
금세 1년이 지나고 해가 바뀐다.
어쩌다 보면 또 금방 가버리고 없을 단풍 구경을 하러 남산에 갔다.
가을이 깊어지면 곳곳에 단풍든 나무들이 있고 때때로 감탄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작정하고 어딘가로 단풍 구경을 가고 싶었고
그곳을 올해는 남산으로 정했다.
좌석버스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려 했건만 중간에 기사 아저씨가 모두 내리란다.
광화문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어 서울역까지 가지 못한단다.
자다 깨서 멀뚱거리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에 놀랐다.
서울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남산으로 올라갔다.
오래전, 단짝친구와 걸핏하면 오르던 때를 떠올려봤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기억을 흐리게 한 건지,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서울의 풍경이 바뀐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서울은 온통 미세먼지에 덮여 있다.
많이 아쉽다.
오래전 그때는 긴 계단을 올라가면 저 건물이 보였었는데
이제는 성벽을 따라 돌아 올라가면 저 건물이 나온다.
오래전 기억 속에 있는 식물원도 없고, 분수도 없다. 아마도 그 자리는 공사 중인 것 같다.
안중근 의사 백범 김구 선생님
이시영 선생님
서울타워에 오르려는 남편에게 나는 남산 순환 산책길을 걷고 싶어서 왔다고 하자 급 노선 변경.
서울 도심에 이렇게 호젓하고 운치 있는 산책길이 있는 줄 몰랐다며 내내 감탄했다.
가을의 짧은 해에 아쉬워하는데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들어오자 또 다른 정취가 느껴졌다.
곳곳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에 마음이 혹했다.
만만하게 보았던 남산 순환 산책길은 꽤 긴 거리였다. 남산이 덩어리가 그렇게 큰 산인 줄 모르고
흥미롭게 시작했던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자꾸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하이얏트호텔을 지나가고, 영화 `최악의 하루'에서 시선을 잡아끌던 남산의 산책길이 여기쯤이려나 추측도 해보며
지나가는 길에 국립극장 간판이 보이고, 장충동이 내려다보이고, 한남동이 내려다보이는 쯤에
구세주처럼 푸드트럭이 있었다. 레몬에이드와 수제 쿠키 한 봉지를 샀다.
푸드트럭 옆에는 대로가 있었고 서울시티투어버스와 관광버스, 시내버스가 수시로 올라갔다.
우리는 진정 몰랐다. 늦가을이라 해가 짧아서 더 늦은 시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깜깜한 시간에 서울타워 밑 광장에 사람들이 그리 많을 줄은.
외국인 단체관람객이 대다수일 줄을. 주로 동남아시아인이 주를 이룰 줄을.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데이트하는 연인들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남산에서 데이트한 기억은 없다.
남편과도 처음 왔다.
아이들 어렸을 때 내 모임에서 아이들 데리고 단체로 와서 케이블카 타고 올라와
저 정자 앞에서 사진 찍은 기억 때문에 무척 반갑게 정자를 봤다.
내려오는 길에 숭례문을 봤다. 괜스레 마음이 뭉클했다.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꾸민 공원도 거닐었다.
어느 분의 멋진 피아노연주도 들었다.
고가도로공원에서 내려다 본 옛 서울역 건물.
그 앞엔 뜻밖에도 노숙자가 참 많았다.
제법 쌀쌀한 밤기운에 어찌 잠을 자는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노숙자들을 보며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먼저 보았던 건물.
그 후로 어디 갈 때면 가장 익숙하게 보았던 건물.
내게 있어서 서울의 상징 같았던 건물에 네온사인이 멋지게 반짝거린다.
촌놈 서울구경은 이만보를 넘겨 찍었고,
일주일에 사흘 헬스 하고, 하루는 뒷산에 가니 평균 주 4일 운동함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종아리 근육통이 생겼다.
산책 끝에 남편과 둘이서 산책 뒷얘기를 안주 삼아 한 잔 하는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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