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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삭았다!

by 눈부신햇살* 2006. 11. 8.

 

[ 그림 : 서정 육심원 - 프린세스 ]

 

 

 

 

어제, 길을 가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냥 휙 스쳐지나가는데, 상대방이 자꾸만 나를 힐끔거리는 느낌에 왜 쳐다보는거야? 하며 뒤돌아봤더니

"야, 너, 누구 아니냐?"

하며 내 이름을 불렀다.

"어머, 언니 오랜만이다."

하면서 뒤돌아 다가갔다. 얼굴에 웃음을 잔뜩 짓고 아는 척에 호응을 하지만 이름이 퍼뜩 떠올라 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 언니는 나를 부를 때 누구야,하고 불러서 이름이 단번에 턱 떠오르지만, 나는 이름 대신 노상 언니라고 불러서 이름이 떠오르지 않나보다. 얘기하는 내내 이름을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서로의 용모를 눈여겨 본다. 아니, 그런 것은 여자들의 특성상 이야기하는 사이사이 대충 쓰윽 훑어봐도 한눈에 들어온다. 옷차림이 어떻고, 머리 모양이 어떻고, 눈가의 주름살이 몇 개 늘고, 피부 상태는 어떻고...... 그래도 아주 친한 막역한 사이가 아니면 대충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며 판단하고 입에 올리지는 않기 마련이다. 친하면 어머 너 어떻고저떻고, 이러니저러니, 어쩌고저쩌고 늘어놓지만......

 

 

그 언니가 대뜸 그런다.

"너는...... 그 뭐라고 하냐?...... 음, 그래, 삭았다!"

나는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인사치고는 너무 황당하고 예의없는 인사에 잠시 멍해있다가 말을 받았다.

"어머 언니, 내가 삭았어?...... 아닌데, 누가 나 삭았다고 안하는데......"

이렇게 어리석은 대답이 또 있을까. 설령 누가 나를 보며 삭았다고 생각한들 이 언니처럼 맘에 있는 말을 곧이곧대로 할리도 없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을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서운한 감정들은 뭐란 말인가. 참지 못하고 또 말한다.

"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삭았다고 말하냐. 내가 그렇게 삭았나?"

재차 말하자 그제서야 너무 했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는지 낯빛이 바뀌더니 서둘러 수습한다.

"아니, 우리가 알던 때가 언제냐? 벌써 2,3년 전이지? 그러니까 얼굴이 변했겠지. 그때는 뽀야니 이뻤잖아."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가무잡잡한 얼굴이어서 뽀얀적은 한번도 없었는데......쩝!

 

 

"언니는 살이 쪘네? 훨씬 이쁘다. 얼굴이 좋아졌다. 머리도 이쁘게 했네?"

하면서 들여다보는 그 언니 눈가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서 몇 개의 굵은 주름이 있고, 화장을 좀 진하게 한 탓인지 눈두덩이도 어디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푸르딩딩하다. 개인적으로 저렇게 나 화장했어요, 티가 팍팍나게 하는 화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입술을 붉게 바른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카라 부분을 세워서 입는 스타일도 좋아하지 않는다. 미장원에서 갓 매만지고 나온 머리 모양도 좋아하지 않는다. 한눈에 보기엔 멋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왠지 멋이 제대로 나는 그런 멋쟁이를 좋아한다. 그래도 전혀 꾸미지 않은 흐트러진 모습보다는 몇 배 낫고, 그 가꾼 마음은 이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정말로 삭았는지 거울이 뚫어질 정도로 어제 하루 거울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봤다. 오른쪽 눈밑으로 검버섯 같은 것이 두 개 돋아나고, 눈가의 탄력도 눈에 띄게 떨어지고, 피부도 탱탱한 맛이 없다. 내 얼굴은 아주 정직하게 세월이 얼만큼 지나갔는지 보여준다. 그래도 주름진 부분에 보톡스를 투여한다든지, 늘어지는 눈꺼풀을 잡아올린다든지 하는 인공적인 행위로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지는 않다.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따스하게 웃는 할머니의 얼굴도 참 귀엽고 편안해 보여서 좋다,고 나를 다독거려야만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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