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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적응

by 눈부신햇살* 2006. 1. 6.

 

 

 

큰 녀석이 연초부터 2박 3일로 교회에서 가는 수련회 차원으로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가나안 농군학교에 다녀왔다.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을 "유익하대. 다녀와." 하며 반 억지로 떠다밀다시피 보냈다. 이상한 것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벌써 저녁나절이 되면 녀석이 보고 싶어서 아른거려야 할 텐데 아들이 없다는 것조차도 인식이 잘 되지 않았다.

이따금씩 잊을 만하면 한번씩

"아, 형아 없으니까 너무 심심해...... 형아 보고 싶다......"

하는 작은 녀석의 푸념에 비로소 '아, 녀석이 없구나!'하고 깨닫는 것이었다.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그 녀석이 일곱 살 무렵인가 처음으로 교회 여름 성경학교에서 하룻밤을 교회에서 묵는 순서가 있어서 하룻밤을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그 저녁부터 녀석의 얼굴이 오락가락거리더니 그다음 날 잠은 잘 잤을까, 이 엄마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밤에 남모르게 엄마 보고 싶다고 눈물 찔끔거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에 작은 녀석이랑 몰래 교회에 가보았다.

슬그머니 들여다보니 녀석은 너무도 명랑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되레 가벼운 실망감과 안도감을 갖고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던가. 처음으로 2박 3일로 교회에서의 여름 성경학교 행사로 기도원에 간 적이 있었다. 하루는 "아, 울 아들 보고 싶다." 하면서 그냥 지나갔다. 그다음 날 낮부터는 녀석의 얼굴이 아른아른 거리고 궁금해서 못 견디게 보고 싶어졌다. 그 저녁에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그만 반가움이 왈칵 치밀어서 "응."하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녀석도 목이 메는지 "엄마"하고 불러놓고 아무 말이 없었다.

"왜?"하고 물었더니 "그냥......"하고 또 아무 말이 없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둘이는 아무 말없이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눈물은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주책없이 콧물도 같이 흘러내렸다. 녀석도 울었는지 코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하고 와." "네."하고 말 몇 마디 못 나누고 끊었다. 그다음 날 아들이 돌아오니 몇 년 만에 상봉한 것처럼 반가워서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고 얼굴을 쓰다듬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남편은 "으이그, 왕주책." 핀잔을 주며 놀렸더랬는데, 그새 이렇게 마음이 달라질 수가 있을까. 예전엔 군인들만 봐도 '아, 우리 아들들 군대 가면 내 눈이 짓무를 거야.' 했는데, 지금 같으면 아주 담담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내라면 군대도 갔다 와야지."하고 씩씩하게 말하면서.

이렇게 나는 나이를 먹고,

녀석은 어른을 향해 걸어가는 걸까.

어디에 보내도 이제는 '잘 지내고 있겠지.' 하는 안심이 더 크게 자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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