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큰 녀석이 영어학원을 가고, 남편은 운동을 하느라고 아직 귀가 전이고, 작은 녀석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나는 티브이를 시청 중인데 띠리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작은 녀석의 영어학원 담임선생님이었다. 늘 그렇듯이 공부를 너무 잘한다는 둥, 웃는 모습이 참말 이쁘다는 둥, 열심히 한다는 둥, 큰 녀석은 매력이 있다는 둥(지난해 담임이었음.), 그래서 여자애들이 무척 좋아한다는 둥(녀석은 극구 아니라고, 자기 좋아하는 여자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아마도 과묵하니까 말 붙이기 힘들어서 안 붙이는 것이겠지. 녀석은 그래서 관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고...), 어쩜 형제간이 다 공부를 잘하고 잘생겼다는 둥,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칭찬을 마구 늘어놓더니 결정적인 한마디.
"재원이도 키가 참 큰데, 준원이도 키가 크대요? 어머니. 어머니 닮았나요?"
"아녜요. 학교에 가면 아이 쳐다보고 저 쳐다보고 해요. 엄마는 작은데 아이들이 커서 이상한가 봐요."
"아, 예. 전 또 엄마 닮아서 그렇게들 키가 크고 괜찮은 줄 알았지요."
오잉, 이게 뭔 말씀? 나는 키가 작다고 했지, 내가 괜찮지 않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이시나. 거기다 대고
"저도 꽤 쓸만해요."
하고 부연 설명을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냥 참았다.
우리 남편이 나를 고른 이유가 아이들 인물은 엄마를 닮는다고 해서 인물 보고 골랐다는디......쩝!
그래서 말인데, 지금처럼 남편의 머릿속이 훤히 보일 줄 알았다면 절대로 그 구박을 받으면서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과의 소개 자리에 나갔더니 남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양리의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나오는 영화 제목과 똑같은 '카사블랑카'에서 입구를 보고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키가 꽤 커 보였 나보다. 그때 나는 7센티미터짜리의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게다가 남편은 앉아서 걸어 들어오는 나를 쳐다보니 상대적으로 커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눈에 콩깍지를 뒤집어쓰더니 내게 얼굴이 참 밝아 보인다며 헤벌쭉 웃는 것으로 굉장한 호감을 보였다. 그래서 연인이 되었다.
외까풀에 평범한 외모, 깔끔한 인상과 날씬한 몸매가 내 눈에도 퍽 좋아 보였으므로.
그때는 46킬로그램 정도 나가던 몸무게가 이상하게도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부터 쭉쭉 빠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43킬로그램까지 나갔다(지금은 그보다 10킬로그램 가까이 늘었지만). 남편은 조금 통통한 타입을 좋아한다.
구두는 7센티미터짜리가 어찌나 불편하던지 4센티미터짜리로 사신었다. 당연히 키도 3센티미터 줄어서 데이트를 하게 됐다. 그때부터였다. 구박이 시작된 것은.
만날 때면 첫마디가
"그동안 살 좀 쪘어?"
하고 비위를 건드리다가
"키도 좀 컸어?"
하며 염장지르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나는 이미 그때 노처녀로 막 접어들기 시작했고, 다른 남자들보다 느끼한 면은 없다고 생각해서 그 모든 것을 참아가며 만났다.
처음에는 공주처럼 떠받들던 사람이, 인적 드문 한강둔치에서 업어주기도 잘하던 남자가, 아이스크림 흘렸다고 구두에 흘린 것까지 다 닦아주던 남자가, 며칠 동안 연락 없었다고 헤어지자던 내게 어떻게 하면 마음이 풀리겠냐고 해서 "무릎 꿇고 빌면..."이라는 말에 주저함 없이 무릎 꿇고 빌던 남자가 어떻게 돌변을 해도 그리 돌변을 하는지 만나기만 하면 염장을 질러대는데, 더러는 맘 같아서는 뒤통수를 한 열대쯤 갈겨주고도 싶은 날도 있었다. 물론 그건 맘속에서만 이뤄지는 일이었지만.
하여튼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밤에 생전 청혼 안 할 줄 알았던 남자 입에서
"우리 그냥 살까?"
하는 멋대가리 없는 말이 나왔다. 그래도 나는 감지덕지해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그 담주인가 인사드리러 시댁엘 갔더니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엉덩이가 그리 쪼삣해서 애나 낳겄냐?"
하셨다. 아, 염장 지르는 것은 어머니께 배웠나 보구나, 하고 생각할 밖에.
그리고 같이 살기 시작한 그 달에 바로 아이를 가져서 그다음 해 3월에 아기 엄마가 됐다.
아이는 아이 때부터 유난히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지금은 깡 말랐지만.).
그래서 흡족해하시다가도 꼭 한 말씀 잊지 않고 하셨으니
"참말로 키는 너 닮으면 안 된다."
였다. 지금 같으면
"어머니, 그럼 인물은 아이 아빠 닮으면 안 되지요?"
하고 농담 삼아 말씀드렸을 텐데, 그때만 해도 하늘처럼 무섭기만 한 어머니인지라 아무 말씀도 못 드리고 생각 없는 여자처럼 웃었다.
손아래 시누이가 결혼하기 전까지 3년 동안 함께 살았는데, 시누이의 키는 어머니를 닮아서 170센티미터였다. 시누이 옆에 서는 것이 제일 싫었다. 키 큰 것을 항상 사람 보는 것의 기준을 삶는 시댁 문화 속에서 얼마나 비교되어 더 도드라지게 작아 보이겠는가. 시누이와 남편 사이에 끼어서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겨드랑이쯤에서 날개가 돋아나 와 날아가 버리든지, 내 선 자리가 쑥 꺼져서 사라져 버렸으면 하고 바라었다.
시누이는 시누이대로 자신의 큰 키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 속으로 나는 그랬다. '그래도 얼굴은 내가 쪼매 더 이쁘잖아. 여성스러움의 무기도 있고...'
키에 대한 열등감은 나이 들면서 차츰차츰 나도 모르게 없어졌다. 시누이가 결혼을 하고 시누이네 집에 가보면 키 큰 여자가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과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귀여운 맛도 없고, 아기자기한 맛도 없고, 집안에서는 더욱 커 보이는 키가 아담한 여자만 못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차라리 작고 아담한 여자가 쫄랑쫄랑 다니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아담한 내 키가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도 작은 할머니가 더 다부져 보이고 귀여워 보인다는 식으로 엉뚱한 자기 위안이었을 것이다.
요즘엔 아들 녀석 사이에서 걸어가면 큰 녀석은 흐뭇한 마음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큰 키를 뿌듯해하고, 작은 녀석은 조만간에 나를 넘어설 그날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비록 작아도 자식은 큰 게 뿌듯하고 좋다. 키 큰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률도 높다고 하지 않는가. 좋은 인상을 심어줘서. 성장 호르몬을 맞는다, 키 크게 하는 영양제를 먹인다, 난리 치는 판에 알아서 저렇게 쑥쑥 커주니 참으로 효자들이다.
"어머니, 아버님은 작으신데, 왜 자식들은 다 커요?"
라는 나의 물음에
"원래 되는 집은 가지 나무에 수박 열린다잖냐."
하시던 어머니 말씀처럼, 되는 집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당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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