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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비밀

by 눈부신햇살* 2005. 11. 7.

 

 

 

 

어제 컴퓨터를 하는 남편 옆에 앉아 있노라니 로그인을 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칸 이동을 한 다음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걸 칸 이동이 되지 않은 채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순간 눈이 휘둥그래져서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남편이 아차, 싶은지 나보다 눈을 더 크게 뜨고서(원래는 나보다 눈 작음.) 나를 쳐다본다.

둘이서 쳐다보다 갑자기 우스워서 마구 웃었다.

"에잇, 비밀번호 바꿔야겠네."

"......"

나는 옆에서 조신하게 아무 말없이 모나리자처럼 미소만 짓고 있었다.

"다 봤어?"

"응."

"에이, 뭐로 바꾸나. 헷갈리는데..."

이 말에 역시 대꾸없이 그저 또 모나리자처럼 웃고 있었다.

"에잇, 볼 테면 봐라. 당신한테서 온 메일 밖에 메일함에 들어 있는  것 없고, 숨길 것도 없는데..."

어, 그거라면 지난번에 로그인 상태에서 자리를 떴길래 내가 슬쩍 들어가서 다 봤는데,

정말 심심하게도 내가 보낸 메일만 주루룩 있던데. 그러나 차마 지난번에 봤다는 말은 못하고

안 본 척 심심한 얼굴로 계속 옆에 앉아 있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남편 혼자서 안절부절이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나 역시 남편이 옆에 앉아 있으면 로그인을 안한 상태에서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블로그는 들여다도 못 보게 한다. 괜히 쑥스럽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와서 들여다보는 블로그를 가장 가까운 남편이 들여다 보는데 왜 그렇게 쑥스러운지 모르겠다.

 

반대로 인터넷상에서 있었던 일을 오프라인의 만남에서 거론할 때도 또 그렇게 쑥스럽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후배들과 함께 카페를 하나 하고 있다. 그곳에서 글로서 갖은 장난을 치고 찧고 까불다가 막상 얼굴을 보면 그런 적 없었던 것 같은 행동을 취하게 된다. 행여나 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들춰내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진다. 내 신체의 약점을 잡았을 때처럼.

 

오래전부터 사진보다 실물이 더 낫다(우와, 돌 날라온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나이 먹는다는 것,이란 글을 올리면서 봄에 등산 가서 찍은 사진을 올렸더니 왔다 간 줄도 모르게 동창녀석이 와서 보았던가 보다. 내게 그런다.

"야, CW아, 그 사진 너무 나이 들어 보이더라. 나이 많이 먹은 아줌마 같더라."

순간 확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 수줍음, 아니 민망함, 무안함.

무슨 단어가 적절한 지 모르겠다.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집중되고(워낙 조신하고 내성적인지라 시선 쏠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그냥 묻어 묻어 가자는 주의다.)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호기심 어린 눈동자 30개쯤...

"어,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와서 보는구나. 당장 블로그 통하기로 돌려버려야지."

이렇게 대책없이, 서툴게 답변했다. 왜 그 순간에 다른 재치 있는 답변은 떠오르지 않는걸까.

그러나 또 속 좁다고 할까봐서, 말했던 친구 무안할까봐서 통하기로 전환하지 않고

여지껏 공개다.

 

그래도 다른 사람 다 봐도 남편에게만은 못 보여준다. 절대로, 절대로.

쑥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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