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진 속의 나무는 은행나무 아닙니다. 아는 분이 올리신 사진 하나 돔바왔습니다.)
은행알을 주웠다. 이태전, 아침 출근길에 줍기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 밑을 지나칠라치면 예사롭게 봐지지 않는다. 때마침 바람이라도 한차례 불어서 우수수 은행알이 떨어지면 바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지금은 출근할 일이 없으니 일삼아 동네를 한바퀴 돈다. 우리동네의 가로수는 은행나무와 버즘나무(수피가 버즘 핀 것 같이 얼룩덜룩 하다고 붙은 이름.)라고 부르는, 북한에서는 방울나무(가을이면 군밤 먹이기 좋은 방울 같은 열매가 열린다고 붙은 이름. 개인적으로 방울나무라는 이름이 더 좋다.)라고 부른다는 플라타너스 두 종류의 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그 밑에는 가을이면 까만 쥐똥같은 열매가 열리는 키 작은 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봄이면 꽃은 별로 보이지도 않는데, 향긋한 향기가 날라와서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면 하얀 쌀알 크기의 꽃들이 피어 있다. 꽃 보고 무시했다가 향기를 맡으면 다시 보게 되는 꽃이 쥐똥나무의 꽃이다.
처음 은행알을 보았을 때는 그 구린내에 질색을 하던 것이 안주로 나오는 고소한 은행알을 먹어보고 나서는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 뒹굴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혀 짓이겨지는 것이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다. 그래서 아침 출근길에 봉투를 하나씩 넣어가지고 다니다 주워서 담아오곤 했다. 비라도 내린 다음날 아침이면 제법 줍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해 늦가을, 아버지 기일에 친정에 갔더니 이심전심이였는지 엄마도 은행알을 소쿠리 가득 주워 놓으셨더랬다. 그뿐인가, 도토리도 주워 말려서, 껍질을 까고 곱게 빻아 놓으셨다가 묵을 쒀놓고 또 가루도 조금 나눠어줬다. 엄마는 도토리, 은행알 줍기, 쑥 캐기, 바다에 가서 소라 잡기,굴 따기 등을 퍽 즐기는데 그런 면을 유일하게 닮은 딸이 나이다. 다른 딸들은 그까짓거 조금씩 사먹으면 되지 주의인데, 사먹는 맛과 내가 직접 줍고 따는 맛과 또 그것을 먹는 맛을 비할까.
마침 오후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 오늘 은행알 주웠다."
"그래야? 얼마나 주웠냐?"
"한 100개 정도."
순간, 실망하는 느낌이 수화기 저편에서 이편으로 건너온다.
"내일 아침에 또 가봐라. 나는 엄청 주워다 놨다."
"도토리도 주웠겠네?"
"말 마라. 사람들이 어찌나 주워가는지 얼마 줍지도 못했다."
"도토리 너무 줍지 마요. 사람들이 너무 주워가서 다람쥐나 청설모가 겨울에 먹을 먹이가 없다잖아."
"그것들 먹으라고 사람들이 먹지 말어야?"
"아니, 사람은 그것말고도 다른 것 먹을 거 많잖아요."
"깊은 산에서나 안 주워오면 되지. 야산에 다람쥐나 청설모가 얼마나 많이 살것냐."
듣고보니 엄마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은행알 까야 될텐데 하고 걱정이시다.
"그거, 그냥 깨끗이 씻어서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먹을 때 비닐봉투에 넣어서 렌지에 돌리거나 후라이팬에 구우면 되는데. 그러면 껍질 다 까져요."
"그런대야? 잉, 나는 니 동생 약해줄라고. 호박이랑 같이 내릴려고."
"아이구, 걔는 호강하네. 엄마가 만날 그리 챙겨주고?"
"그래도 그것이 그런 줄이나 안대야. 해줘도 잘 챙겨 먹지도 않는단다."
엄마와의 통화가 끝난 뒤, 은행의 겉껍질을 위생장갑을 끼고 벗기고 있으려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큰녀석이 그런다.
"엄마, 내 발에서 왜 이렇게 냄새가 나지?"
혼자서 웃음이 터진다.
"왜? 왜 웃어요?"
"그거 니 발냄새 아냐."
"그럼?"
"은행 껍질 냄새야."
"에잉, 담부터 주워오지 마요."
"야, 햇은행알 맛이 얼마나 고소한데."
남편은 남편대로 은행알만 주워오면 구린내 난다고 질색을 하던데, 부전자전이다.
다 까고 씻어서 말리면서 오늘 몇개나 주웠나 세어보니 무려 250개나 된다.
아, 이 뿌듯함.
하루에 여섯 개를 넘게 먹으면 독성이 있어서 마비 증세가 올 수도 있다고 하니
여섯 개를 넘기지 말고 먹어야겠다. 250개이니 한달 보름 정도의 식량 비축?
크흐흐흐......
낼 아침엔 일찌거니 봉투 들고 나서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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