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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웰컴 투 동막골

by 눈부신햇살* 2005. 9. 18.


 

 

지난 일요일에 남편과 일산 쪽에 볼 일을 보러 갔다. 아이들은 어느새 머리가 컸다고 함께 움직이는 걸 거부하고 집에 남겠다고 해서 둘이서만 갔다.

볼 일을 보고 마침 일산까지 왔으니 그 유명한 호수공원이나 한바퀴 돌자고해서 둘이서 돌아다녔다. 내 옷차림이 근처에 사는 사람 같지 아니한 데다 아이들도 딸리지 않아서 조금 이상해 보였는지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의 눈길이 자주 내게 머물러서 이상하다 여겼는데 남편 역시 그걸 느꼈던지 "우리가 불륜으로 보이나? 손 잡지 말고 걸어." 한다. 나는 습관이 손 붙들고 걷는 걸 즐기는 형이라 그러든지 말든지 내 좋은 대로 손을 붙들고 흔들며 걸었다.

처음 와 본 공원이였는데 참 컸다. 잘 가꿔져 있었다. 일단 호수가 참 컸고 주변의 오피스텔들과 아파트들과 어우러져 도심 속에 자연이 빚어내는 풍경이 더욱 좋아 보였다.

팔각정에 앉아서 내려다 보는 풍경도 좋았다. 야생화 화단도 잘 가꾸어 놓았다.

선인장을 심어놓은 온실에도 들러 여러 종류의 선인장에 입 벌리고 감탄하며 들여다도 보고 잘 다듬어 놓은 산책로도 걷고 음료수도 뽑아 마시며 한들한들 걷다가 돌아오는 길, 일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차가 많이 막혔다. 둘이서 이 말 저 말 늘어 놓으며 음악도 들으며 앉아 있는데 쿵,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동전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오고 몸이 앞으로 확 휜다. 그 잠깐 동안에도 정신이 멍하며 별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이게 무슨 일이지?' 몸이 제자리로 돌아오고도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남편 얼굴만 멀뚱멀뚱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으씨, 뒤에서 들이 받았네!"

그제서야 감을 잡은 나. 그 사실을 알고서도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해 멍하니 앉아 있는데 앞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뒷통수와 목덜미 중간쯤을 만지면서 우리를 노려본다. 아직도 멍한 정신인 나는 저들이 왜 우리를 노려보지?하는 생각만 한다. 뒤늦게 우리가 받히면서 저들도 밀려서 받혔구나!,깨닫는다. 그 앞에 차까지, 총 4대가 멈춰서 있다.

정신을 수습하고 밖에 나와서 우리 차의 뒤쪽으로 가보니 세상에나 트렁크가 반으로 접히다시피 했다. 언제나 사고 난 차를 보면서 어쩌다 저 지경이 됐을까, 생각했던 난데, 남의 일처럼만 느끼던 난데, 막상 당하고 보니 사고가 마비된다.

무얼 먼저 해야되는지, 어찌해야 되는지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그새 정신을 좀 차린 남편이 자동차보험에 신고한다 어쩐다 한다. 그런데 사고시 피해자는 경찰서에 먼저 신고하는 거고, 가해자가 보험에 신고하는 거라는데...... 결국은 우리 앞의 차가 먼저 경찰서에 신고했다.

사고 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견인차들은 쏜살같이 달려와 대기하고 있다.

나는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욱신거려서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남편은 더하겠지.

곧이어 경찰이 달려오고, 우리 차는 곧장 정비소로 가고, 경찰차에 실려 경찰서로 갔다.

한시간 넘게 조사를 했다. 머리는 멍하고 속은 여전히 메슥거린다.

 

조사를 마치고 카센타에서 수리하는 기간 동안 렌트해주는 차를 타고 집근처로 왔다. 이제는 새삼스럽게 정차해 있을 때에도 무섭다는 생각이 와락 든다.

종합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 끝에 개인병원으로 옮겨서 입원했다. 3주가 나왔다. 차는 2주나 걸려야 수리가 된다고 한다.

작은녀석이 통화하는데 울먹거리더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으앙,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게해서 입원 생활이 시작됐다. 아이 둘 낳으면서 골반은 작은데, 아이들 머리는 커서 순산할 수 없다고 해서 제왕절개하며 일주일씩 두 차례 입원했던 것 외에 처음 겪는 입원생활이다.

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팔,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외양은 멀쩡한데 환자 생활을 하려니, 비록 머리와 허리, 어깨가 아프긴 하지만 얼마든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처지라 무료하기 짝이 없다. 침대에 누워서 문자를 보낸다. 남편에게.

"뭐하슈?"

"커피 마시자."

심심하면 만나서 커피 마시고, 아래층에 내려가서 음료수 마시고, 남편이 내 병실로, 내가 남편 병실로 마실을 다닌다. 오전에는 링겔을 맞고, 하루 두 차례 물리치료를 받을 적엔 둘이서 나란히 이인실에 들어가서 물리치료를 받는다. 혹, 다른 실로 입실해서 치료를 받으면 문자로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한다. 문병 온 직장 동료가 그런다.

"좋게 생각하세요. 이 나이에 부부가 이렇게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디 그리 흔해요."

 

그렇게 느린 듯 빠른 듯 일주일이 되어 가고 한가위,라는 명절이 되었다. 아직 운전은, 더구나 장거리 운전은 무리여서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오늘 추석 당일엔 온전히 집에서 보내기로 해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오랜만에 시골집에 안가는 명절이라서 영화나 한편 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외출'이라는 영화가 보고 싶었는데, 아이들과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하다 보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선택한 영화가 '웰컴 투 동막골'이다.

 

보고 난 소감 한마디.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군데군데 스며 있는 따뜻함과 유머가 영화를 살린다.

불발인 줄 알았던 수류탄이 곳간에서 터질 때의 옥수수가 팝콘눈이 되어 내리던 환상적인 장면이 좋았고, 빨갱이를 골라낼려고 할 때 순간의 재치로 갑작스럽게 어린 북한 병사의 부모가 되어야 했던 북한군 임하룡과 동네아줌마의 천연덕스런 다정함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미친여자로 나오는 강혜정의 맑은 얼굴도 좋았다. 텔레비전으로 보면 결코 느끼지 못할 전쟁시의 폭발음, 비행기 날으는 소리, 총성 소리는 이래서 영화는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경도 비디오로 빌려다 집에서 보면 그만큼 손해일성 싶게 참 아름다웠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여서 우리는 돌아오며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참 좋다!"

 

내일부터 또다시 입원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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