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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샤기

by 눈부신햇살* 2005. 8. 6.


 

 

어제 큰녀석과 함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남들은 뒷머리가 길면 더위를 느낀다는데, 나는 앞머리가 눈을 찌를 정도로 길면

더위를 느낀다. 더군다나 어제는 그야말로 도로 위에다 계란을 팍 던지면

그대로 계란후라이가 될 정도로 햇빛이 이글거리는 날이었으니

날도 더운데 머리나 자르자,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 동안은 아들녀석 둘이서만 집앞의 미장원을 다녔는데,

큰녀석이 서서히 겉멋에 눈을 뜨고 있는 관계로 이번달에는 작은녀석 혼자서 미용실에 가야 했다.

 

그러던 녀석이 날은 더운데 머리는 기니까, 더워서 자르는 것이 아니고 남들 보기에 더워보이고 더부룩해 보여서 자르는 거였다.

 

"그럼, 엄마 다니는 미용실에 가서 함께 자를까?'

아들은 좋아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쫄래쫄래 따라온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양산으로 가리고 가며 아들녀석에게도 살짝 씌워줬더니

키가 눌리는 기분이어서 불편하단다. 하긴 나보다 머리 하나가 쑥 올라오니

그 녀석 키에 맞춰서 양산을 들면 내가 벌을 서는 기분이다.

 

나란히 미용실 의자에 앉았다.

"어머, 엄마가 너무 젊어 보여요. 결혼을 빨리 하셨나봐요?"

"아녜요. 늦은 결혼인데요. 제가 젊어보이는 것이 아니라, 애가 조숙한 거예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걸요."

"네? 고등학생인 줄 알았어요."

키만 훌쩍 큰 것이 아니라 얼굴도 고등학생짜리 얼굴을 하고 있어서 함께 길을 걷다보면

누나들의 눈길이 아들녀석에게 머무는 것을 요즘 느낀다. 나는 안 보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아들의 눈치를 본다. 아직 마음은 어린지 별 느낌없이 조잘거리며 걷곤 한다.

 

똑같이 시작했는데, 먼저 컷트가 끝난 나는 의자에 앉아서 아들을 지켜본다.

미용실에 가기전 자기가 하고 싶은 머리 모양을 주절주절 얘기하는 걸 건성건성 들었는데,

앞머리는 짧게, 뒷머리는 길게 자른다. 얼굴이 좀 기름한 편인데 그런대로 썩 어울리는 모양이다.

왁스를 발라서 잡아 놓은 모양을 보니 웃음이 풋, 터진다.

"야, 멋있긴 한데, 너무 얌전해 보이지 않는다. 너무 껄렁해 보여."

아들은 그저 희희락락이다.

 

돌아오는 길, 아들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야, 정말 누가 너를 초등학생으로 보겠냐? 머리까지 그렇게 멋을 내고 보니 영락없는 고등학생이다. 그 머리 모양이 니가 말하던 '샤기'라는 스타일이야?"

"응. 이상해?"

"아니, 잘 어울리긴 한데, 맨날 그렇게 머리 모양을 잡아줘야 하는 거야?"

"응. 왁스 발라서 이렇게 이렇게 하래."

하면서 미용사가 알려준 방법을 손동작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다음번에는 '버즈'라는 그룹의 싱어인 '민경훈'의 머리를 해보겠단다.

머리 모양의 이름까지 알려줬는데, 그새 나는 까먹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 나는 그 나이때에 세상 모르고 살았는데......

 

영어학원에 다녀온 녀석.

친구들이 그랬단다. 그런 머리를 하고 있어도 얼굴이 범생이 얼굴이어서

머리가 잘 안 어울린다고. 머리 따로, 얼굴 따로 논다고.

그 말이 왜 위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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