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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단풍비

by 눈부신햇살* 2005. 11. 4.

 

 

 

 

올봄에는 이리 복사꽃이 화사하고,

개나리 진달래도 더불어 봄을 알렸더랬는데,

꽃 피던 봄도 가고, 무덥던 여름도 가고, 낙엽 지는 가을이다.

요 며칠 가을답지 않고 포근한 것이 마치 봄날 같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은 바람이 한차례 불 때마다

봄에 꽃비 내리듯이, 겨울에 눈 내리듯이,

단풍비가 되어 하르륵하르륵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정취에 빠져드는 우리와 달리

미화원 아저씨에게는 골칫거리인가보다.

오늘 낮에 길을 걸어가다 미화원 아저씨가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의

개나리들을 마구 후려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는 낙엽들은 울긋불긋 아름다웠는데,

아저씨의 빗자루질에 떨어지는 낙엽들은 푸르딩딩하다.

아주아주 오래전 햇빛 따스한 봄날에 친구와 국립묘지에 간 적이 있었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사돈에 팔촌 중에도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분이 아무도 없음에도 국립묘지를 가끔씩 찾아간 이유는

순전히 한적하고 잘 정돈 된 느낌 때문이였다.

따스한 봄 햇빛을 등에 받으며 잔디밭에 앉아 있는데,

아기주먹만한 탐스런 하얀 목련이 툭툭 떨어져 내려 나무 밑이 하얬다.

얼마 있으니까 군인 복장의 젊은이가 하나 오더니

빗자루로 쓰는가 싶더니 나무를 냅다 발길로 차길 몇차례,

꽃잎들이 폴폴 눈나리듯 날렸다.

순간 환성이 터졌다.

따스한 봄 햇볕 아래 하염없이 떨어져 내리던 목련꽃들.

그러나 곧 이어 불쌍한 나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저씨의 애환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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