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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시골에서...

by 눈부신햇살* 2005. 3. 3.


 

 

 

 

 

 

 

 

 

 

 

 

 

 

 

 

 

 

 

설 쇠고 남자들은 직장으로 가고, 동서와 형님들은 번갈아 근처의 친정과 집을 다녀오고, 

나만 집도 멀고 친정도 먼탓으로 시골집에 남았다. 햇살은 눈부시고, 

하늘은 파랗고 바람도 잠잠해서 어머님의 연두빛 파카를 걸치고 슬리퍼를 끌며 산책에 나섰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길래 그뒤를 타박타박 따라갔다. 

동네 어귀의 느티나무 아래서 거름을 나르고 있는 옆집아저씨를 만났다.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져서 허리를 펴지도 못 하신 채 인사를 받는다. 

 

한동안 아버님이 관리하시던 곡물창고를 지나고, 그새 새로 지은 집들이 많아진 

길을 지나 학교 앞에 도착했다. 아름드리 플라터너스 

몇 그루를 보기 흉하게 가지를 다 쳐냈다. 

그동안 보기 좋았었는데......폐교가 돼서 쳐내는 건지, 왜 쳐내는 건지 불만스럽다. 

 

아이들은 교사를 빙빙 도느라 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 

발걸음을 돌려 뒷내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우리동네에서는 금방인데 

학교 앞 동네에서는 제법 걸어가야 뒷내가 나온다. 

 

한적한 동네에 햇살만 부서진다. 하늘은 푸르고 푸르러서 쥐어짜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의 배경이 되는데, 

그 모습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특수작물로 딸기를 심는 곳이어서 보이는 것이 모두 비닐하우스다. 

지금이 가장 한가한 철이기도 하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눈코 뜰새 없이 바뻐서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가 된다. 

 

시집와서 첫번째 맞이하는 봄에는 큰아이를 낳느라 못 와보고, 

그 다음해에 인사차 시골집에 들렀더니 저녁식사후에 어머님이 그러셨다. 

"널랑은 한 보름 있다 가라. 밥 좀 해주고......" 

싫다는 말도 못하고, 아니 어른 말씀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그 다음날 남편은 올라가고 두 살짜리 아들녀석과 나만 남았었다. 

 

시부모님은 새벽 세네 시면 눈을 떠서 딸기밭으로 딸기를 따러 나가고, 

도저히 그렇게 일어날 수 없는 나는 여섯 시쯤에 일어나 아침밥을 한다. 

그럼 벌써 한참을 일하고 난 부모님이 아침을 들러 오신다. 

커피까지 끓여서 드리고, 상을 치우고, 집을 대충 청소하고, 빨래를 해서 널고, 

두 살짜리 아들녀석을 앞장 세우고 들로 나간다. 

 

봄날의 나른한 햇살 속을 아들녀석과 손잡고 걷다, 걷기 싫다고 떼를 부리면 업고 걸어가다 흥이 나면 노래도 불러준다. 

 

'민들레는 늙어서 할아버지 되고 할미꽃은 늙어서 할머니 된다 

할아버지 하얀 고깔을 쓰고 할머니는 하얀 지팡이 짚고 바람 타고 동동 

길을 떠났다 명년 봄에 또온다 고개 넘었네......' 

 

딸기밭에 들어서 보면 딸기향이 코를 찌른다. 그때는 일꾼도 사서 딸기를 따던 때라 

딸기를 담아논 바구니가 수북하게 놓여 있고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딸기포장에 여념이 없었다. 

도시에서 직장만 다니다 결혼한 터라 일머리 서툰 며느리는 연방 혼나가며 어머니의 지도 아래 딸기포장을 거들었다. 

어쩔 땐 괜히 눈물이 나서 다른 비닐하우스로 들어가서 눈물을 닦고 오기도 했다. 

 

점심 때는 인부들의 밥까지 해야해서 딱 세식구 밥만 하던 집안일도 서툴던  이 며느리 또 혼나고......

그러다 주말이면 온 식구들이 몰려오니  그 밥 해낼 생각에 또 미리 겁 집어먹고 걱정하고...... 

그러다 결국 한 소리 들었다. 어머님 가라사대, 

"재원에미는 큰집에 큰며느리로 안 가길 다행이여. 그랬다간 큰일 날 뻔 했다야......" 

시동생 왈, 

"또 셋째형수가 밥했어요?" (어쩌면 그렇게 꼭 밥이 설든가, 되든가, 질든지......^^) 

작은 시누이 왈, "그저 언니는 언니네 세 식구, 딱 그정도가 언니에게 딱이야......" 

그럼 또 화장실에 가서 눈물 훔치고...... 

 

그래도 꼭 한마디 대꾸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어머님께는 "그래서 일부러 셋째아들과 사귀었어요." 

시동생에게는 "결혼만 해봐요. 색시가 밥만 못해봐라." 

시누이에게는 "배워서 하면 되지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있어요." 

 

그래도 주말이면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보는 남편이 너무 반가워서 동구 밖 정자나무 아래서 

아들녀석과 기다리다 버스에서 내리는 남편과 손 붙들고 집에 들어와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리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드디어 딸기 따는 것도 조금 수그러들고 남편이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했다. 

집에 가자는 그 말에 내 겨드랑이 어디쯤에서 날개가 쑥 돋아나와 펼쳐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찌나 설레든지 밤에 잠도 안 올 지경이었다. 

 

점심 때쯤 버스를 타려고 정자나무 아래 서있는데 멀리서 아버님이 헐레벌떡 뛰어 오신다.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니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니네가 간다고 하니까 내가 마음을 어째야 할 지 몰라서 일하다말고 내가 이렇게 뛰어왔다." 

세상에, 세상에나, 그러면서 울고 계신다. 어쩌겠나. 같이 손 붙들고 

"아버님, 울지 마세요. 아버님 우시니까 저도 눈물 나잖아요." 

하고 같이 울 수 밖에......^^ 

 

그런저런 지나간 추억들이 떠오르고, 다른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가는 속에 논두렁에 피어난 

자주빛꽃을 발견하고 저 꽃 이름이 봄까치꽃인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며 뒷내에 가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오후 들어서 바람이 세지고 추워졌다. 네 시쯤에 군인이어서 명절 때도 보기 힘든 큰아주버님이 오셨다. 

덕분에 그 밤에 큰아주버님의 섹소폰 소리도 들어보고, 다음날 점심 무렵에는 며느리 넷이서 큰아주버님이 가지고 오신 

노래방기계에 맞춰서 노래도 부르며 실컷 놀았다.(그집 아들들은 잘 안 논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기가 바쁘게 내리 밟고 온 남편에게 둘째아주버님이 그러신다.

 "야, 제수씨 노래 잘하더라." 그러게요, 제가 고음이 약해서 그렇지 간드러지게 부르는 트롯은 좀 한당게요~ 

 

그 밤부터 바뻐서 일요일인 어머님 생신에는 모두다 진이 빠질 대로 빠졌다. 

도시에서처럼 식당에서 만나 식사 한 끼하고 식당에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네어른들, 오촌들, 외가사촌들까지 모두 몰려와서 돌아서서 상 차리고, 

돌아서서 상 차리고, 상을 몇 번 차린지 모르겠다. 결국엔 우린 

이 다음에 집에서 잔치 같은 건 절대로 하지 말자,고 결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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