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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종로에서 1

by 눈부신햇살* 2005. 4. 6.

어제는 오랜만에 다시 종로로 나갔습니다.
외출 준비하면서 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가늠해보니
공기는 찬 듯해도 햇살이 눈부셔서
감히 도톰한 옷은 못 걸치겠더라구요.
`그래도 봄인데......'
하는 생각에 와인색 가죽재킷으로 결정을 보고
역시 봄이니까, 하는 맘으로 분홍색 니트를 받쳐 입고
라라~~ 집을 나섰습니다.
중간지점에서 만나서 함께 가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는 전철역에서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찬 지 나중엔
몸이 달달 떨려오더라고요. 20여분이나 기다린 끝에 친구들을 만나 전철에 오르니
그제야 조금 살 것 같더라고요.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이문열)씨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초등 5년 교과서에 일부분이 오르게 된 걸 알았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책인데, 신기하고 놀랍고
"어머머, 얼마나 좋을까? 내 글이 교과서에 실린다는 거 얼마나 좋을까......"
연신 감탄했습니다. 그러다 (김용택) 시인의 얘기도 나오고,
"야, [그 여자네 집]이 고등 교과서에 실렸다더라.초등 교과서에도 몇 편 실렸다더
라......"
하며 옆의 사람 의식하지 않는 아줌마들의 특성을 여지없이 발휘하며 종로에 도착했
습니다. 휴대폰 없이 어떻게 살까, 싶게 서로 헤매가며, 연락 주고받아가며
간신히 나머지 두 친구 만나 허름한 해장국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런 재미도 또 다른 사람 사는 재미라고 해서
오륙십 대 아저씨들 사이에 비집고 앉아 한 그릇씩 차지했습니다.
정말 재미로나 먹지, 맛으로는 못 먹겠더군요.
값은 정말 저렴해서 한 그릇에 1500원씩.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만족해서 웃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인사동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그래도 햇살은 따뜻해서 등이 포근해지는 가운데
샾에도 들르고, 갤러리도 들러 뜻 모를 그림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찻잔 전시회도 보고, 원성 스님의 작품 진열돼 있다는 <풍경>
어렵사리 알아내서 거기도 둘러보고......
그러다 호박엿 가게에서 시식용 엿 주워 먹으며 너무 먹는 거 같아
미안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아저씨, 저 세 개 먹었어요."
친구들에게도 제가 집어서 막 줘 놓고는......
아저씨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
`에구,, 민망, 쑥쓰......'
한껏 웃어줬지요~~
다시 출출해져서 뒷골목으로 들어가
동동주에 파전, 빈대떡 시켜서 또 수다가 늘어졌지요.
할 얘기는 해도 해도 왜 그렇게 많은 지,
나올 때 주인장한테 한 소리 들었습니다.
"이거 밖에 안 드셨어요?"
먹는 양에 비해 너무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면박이지요, 뭐.
그래도 뭔가 또 아쉬워 종로 거리를 배회하다
이번엔 호프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또 늘어지는 수다......
이렇게 밖으로 다 털어놓는 수다 때문에 여자가 남자보다
수명이 긴지도 모르겠어요.
해가 뉘엿뉘엿, 거리엔 네온사인이 하나둘 켜지고......
"이제 그만 가자!"

 

집에 돌아와 이 나쁜 엄마, 큰아들 녀석 붙잡고 물었습니다.
"야, 너네 교과서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나오냐?"
"예.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야, 그거 [이상문학상 수상작]이야. 우리 집에 책 있어."
눈이 휘둥그레지며
"어디요? 어디?"
찾아서 줬더니 밤 11시 30분쯤까지 다 읽고 잤습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저요?
저 반성 많이 했습니다.
아,,, 이 무심한 엄마 같으니......

 

 

 

2004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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