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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생일과 계절

by 눈부신햇살* 2005. 8. 22.


 

 

오래전에 히트한 노래 중에 정미조 씨의 '사랑과 계절'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오래전, 아직 푸르던 스물서너 살 무렵에 누구와 누구, 누구랑 놀러가서 게임에 걸려서 벌칙으로 불렀던 적이 있다.

' 사랑하는 마음은 사월이지만

  사랑할 때 마음은 꽃이 피지만

  이별하는 마음은 찬바람 불어

  이별할 때 마음은 겨울이라네...'

그때 내가 벌칙으로 이 노래를 불렀었다는 걸 누구와 누구, 누구는 기억이나 할까?

 

언젠가도 말했듯이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북미원주민은 8월을 이렇게 부른단다.

(이것 역시 언젠가도 말했듯이 노트님의 게시물에서 뽑아왔다.)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달 - 퐁카족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 쇼니족

노란 꽃잎의 달 - 오사지족

 

우리나라에서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려면 적어도 10월은 되지 않아야 될까 싶은데,

그곳에서는 8월이면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나보다.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한다니,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8월의 무더위는 아무 생각도 안나게 하는 힘을 가졌지. 머리가 텅 빌만큼 무더운 한여름.

 

노란 꽃잎의 꽃은 내가 알기론 메리골드라는 원예종과 금계국(중국에서 왔다는데...)과 원추천인국이라고도 루드베키아라고도 부르는 꽃이 있는데, 아마도 이 루드베키아를 일컫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이 루드베키아는 한번 보면 그 꽃모양을 절대로 잊지 않을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꽃이다. 생김새와 꽃 색깔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그러는데, 그 사람이 태어난 계절이 바로 그 사람의 계절이 되는 것이 체로키의 관습이라고 한다. 꼬마 주인공은 혼혈 체로키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에 태어난 주인공 '작은 나무'는 생일이 하루로 끝나지 않고 여름 내내 생일이 계속 된다. 또, 자신이 태어난 계절에 태어난 고향과 아버지가 한 일, 어머니의 사랑 등에 대한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듣는 것 역시 체로키의 관습이라고 한다.

 

나는 체로키족은 아니지만, 순수한 단일 민족인 대한민국산이지만 체로키 식으로 되짚어본다.

내 생일은 음력으로는 9월이 끝나갈 때쯤이지만 양력으로 하면 10월말쯤이 되거나 11월초쯤이 되곤 한다. 가을이 깊을 대로 깊어진 늦가을.

그래서 장난으로 겨울잠 준비를 해서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배암이라고 늘 말하곤 했다.

 

북미원주민의 달력에서는 10월은

시냇물이 얼어 붙는 달 - 샤이엔족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 키오와족

큰 바람의 달 - 쥬니족

잎이 떨어지는 달 - 수우족

 

11월은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 크리크족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 체로키족

강물이 어는 달 - 히다차족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 - 테와 푸에블로족

기러기 날아가는 달 - 키오와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아라파호족

 

그곳 역시 가을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서 갈무리를 하고, 외로움, 쓸쓸함과 추수 후의 풍요로움이 함께 느껴지나보다.

 

역시 체로키 식으로 옛날을 되짚어보면, 나는 소나무 '송'자가 들어가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섬에서 육지로 시집 온 엄마와 농사와는 무관하게 낙지나 잡으면서 세월을 보내는 아빠가 있고, 세 분의 고모가 있었고, 두 분의 삼촌이 있었고, 백발의 할아버지와 몸집이 넉넉한 할머니가 있었다.

그 속에서 늦가을의 어느 날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조그만 계집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 전날 용동에서 사내아이 하나가 태어났고, 그 전전날에 유종동에서 아니 낭계동(?)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나서 그곳의 작은 학교를 3년을 같이 다녔다. 열한 살부터 열세 살 때까지.

 

체로키 식으로 따지면 가을은 나의 계절이다.

곡식이 영글고, 감이 붉게 읽고, 도토리와 밤이 떨어지고, 코스모스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나뭇잎은 붉은색, 노란색의 단풍이란 옷으로 갈아입고, 바람은 선들선들 시원하게 몸을 휘감고, 기러기는 울며 하늘을 날아가고, 달은 휘영청 드높게 밝아서 서럽기마저 한......

 

그 모든 것이 지나면, 나의 계절이 지나면 다른 세상으로 접어드나 보다.

체로키족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이라고 표현했다.

12월이 생일인 사람은 겨울이 내내 생일인 셈인데, 워낙에도 짧기만 했던 가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어서 아쉽다.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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