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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엄마가 싫어하는 것들

by 눈부신햇살* 2005. 7. 5.



육심원 씨의 저 작품은 저렇게 밝은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전인권의 머리를 능가하게 부풀려 놓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손톱은  마귀할멈처럼
길게 길러서 붉은색 메니큐어를 바르고, 눈두덩이는 한 대 맞은 듯
초록색 아이새도우를 바르고, 붉은 볼연지에 역시 빨간색의 립스틱을
바른 모습을 엄마가 싫어한다는 걸까.
나 같은 성격의 엄마인가 보다.
아니 울엄마같은 성격인가?
예전에 쫙쫙 펴는 스트레이트 머리가 하고 싶었다.
허구한 날 긴 퍼머머리를 하고 다니니 때론 사자갈기 같기도 해서,
어깨쯤에서 찰랑거리는 생머리의 느낌을 가져보고도 싶었다.
부풀은 가슴을 안고 미장원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미장원에 가기 전에 내가 상상하고 그려보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시골에서 막 상경한 듯한 나이 든 노처녀 하나
거울 속에 오롯이 앉아 있었다. 더우기 다음날 직장상사와 동료들의 반응 역시
시큰둥한 것이어서 그 다음다음날로 다시 미장원에 가서 예전의 사자갈기 머리로
다시 만들었다. 문제는 집에 가서 터졌다.
나를 본 엄마, 입을 못 다무시더니
"아니, 너는 하룻만에 다시 뽀글이파마를 했냐?"
"네."
"너 돈 많다! 하루 걸러 머리를 하고?"
"......"
말씀을 하시다보니 누르고 있던 감정이 점점 치밀어 오르는지
따따따 딱다구리처럼 속사포를 쏘아대신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난 잠자코 있었다.
그런데 점점 점점 격앙 되어가던 엄마가 도저히 말로만은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눈 깜짝할 새에 머리를 한 대 쥐어박히고, 등을 한 대 맞았다.
그러고도 감정을 누르지 못해 씩씩거리고 있는 엄마를 보니 이대로 있다간
화를 면치 못 하겠다는 깨달음이 뇌리를 팍 스쳤다. 냅다 밖으로 뛰쳐 나갔다.
엄마도 총알처럼 따라서 쫓아왔다. 더 멀리 도망 갔다.
그랬더니 엄마가 붉으락푸르락 얼굴 색깔을 바꿔가면서
"좋은 말 할 때 너 이리와! 니가 시방 생각이 있는 애냐? 없는 애냐? 응? 이리와!"
"싫어. 또 때릴거잖아!"
"그럼 너 집에 안 들어올 거야?"
"엄마 무서워서 어떻게 들어가."
"아니 그래도 저것이 잘했다고 따박따박 말 대꾸야."
다시 솟구치는 화와 함께 쫓아오신다. 역시 더 멀리 간격을 벌이면서 도망 갔다.
집 근처를 뱅뱅 돌면서 얼마쯤 쫓겨다니고 나니 제 풀에 지치신 우리엄마,
화만큼은 사그러들지를 않아서 여전히 씨근거리고 있더니 갑자기 집으로 들어가신다.
이제 조금 풀리셨나 기다리고 있었더니 웬걸 내 핸드백이며 옷가지 몇 개를 들고 나와서
내 쪽으로 던지시며, 검지를 내 쪽으로 겨누시며
"너 집에 들어오지마! 나가서 살어! 하루 걸러 머리를 지지든지 볶든지 니 맘대로 허구 살어!"
하고 고함치시더니 쑥 들어가 버리신다. 추운 겨울날에 나더러 어디로 가라고......
게다가 신발도 슬리퍼 차림이었는데......
몰래 동생을 불렀다. 구두와 화장품 몇 개 들고 친구네 집으로 갔다.
친구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박장대소를 했다. 남은 슬픈데.....칫~!!
무서워서 집에 갈 생각도 못하고 이틀이 지났나보다. 어떻게 집으로 들어가지,
궁리하고 있는데 울엄마가 전화 했단다. 떨리는 마음으로
"여보세요."
받았더니 여전히 하이톤으로 말씀하신다.
"너 진짜 집에 안 들어오냐? 너 시방 반항하냐?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것이?"
"엄마가 나가라며? 글고 엄마가 그렇게 무섭게 하는데 어떻게 들어가."
"그래서 니가 안 들어 오겠다고?"
"엄마가 화 안내면 들어간다고....."
잠시 틈이 생기고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숨소리가 들리고 이어
"니 맘대로 해부러라~!"
그리고는 수화기를 탁 내려 놓는 소리.
갈등에 휩싸인 나.
'들어 가? 말아? 아직도 화가 덜 풀렸는데......까짓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눈 딱 감고 들어가자.'
그 다음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한, 뻔할 뻔 자다.
그때 일로 하루 걸러 하루로 미장원에 드나들면 안 된다는 크나큰 교훈을 얻어서
반 년에  한번쯤 퍼머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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