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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첫사랑

by 눈부신햇살* 2005. 8. 17.


 

 

 

 

 

 

 

 

 

 

 

 

 

 

 

 

 

 

 

 

 

사노라면 누구든 어쩌다 한번쯤은 지나간 첫사랑을 떠올려보는 일도 있으리라.

불현듯 스쳐가는 바람에 떠올릴 때도 있을 테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여겨지는 일에서조차 연관지어져서 사소한 일상처럼 떠올리게 되는 일도 있으리라.

 

나는 남편의 첫사랑을 알고, 남편은 나의 첫사랑을 알고 있다.

남편을 소개 시켜주던 남편의 고향 친구는 그 무슨 심술인지, 악취미인지 물어보지도 않는 첫사랑 얘기까지 들려줬다. 덕분에 연애할 때 그 지나간 첫사랑으로 인해 크게 한번 싸웠다.

고향 근처의 도시로 나와 학교를 다니던 남편이 매주 첫사랑을 만나러 시골집에 내려 갔다던 말에 발끈해서 싸우게 됐다. 안절부절하며 나를 달래지 않았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때 남편은 변변한 직장을 그만 두고, 변변치 않게 공부를 하고 있었고, 공부한답시고 일주일에 한번씩만 얼굴을 봤다. 바로 옆동네에 살면서도 일주일에 한번씩 밖에 보지 않는 우리와 시외버스를 타고 한시간쯤 가야하는 시골에 살던 첫사랑과 만남의 횟수가 같다는 데에 화가 났다.

 

남편은 나의 첫사랑을 아직도 질투하고, 나는 남편의 첫사랑에 대해서 지금은 질투하지 않는다.

남편의 첫사랑은 남편이 군에 가있는 동안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두 번째 휴가를 나와서인가 만났을 때, 건달처럼 생긴 남자와 살림을 차리고 살고 있더라 했다. 배신감을 느꼈던가 보았다.

첫사랑을 얘기할 때 전혀 애틋해하는 기운이 없다. 나를 의식한 가면 같은 행동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여자들은 육감이 발달해서 몸짓으로도 알 수 있는거니까.

 

남편의 첫사랑은 탈랜트 전인화를 닮았고, 무용을 했었다 한다. 아직 고등학생일 적에 몇 명의 친구들과 내기를 했더란다. 누가 먼저 자기 여자친구로 만드나. 다 퇴짜를 맞았는데, 남편은 성공을 했더란다. 그래서 도내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시골의 저수지 둑방을 자주 거닐었더란다. 손을 잡았었냐는 질문에는 늘 웃음으로 답을 대신해서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나는 무용은커녕, 나무토막처럼 뻣뻣하면서 운동 신경은 제로에다 키도 작고, 전인화와는 아주 거리가 멀게 생겼다.

인연이 될려고 그랬는지 첫만남에서 제법 키를 크게 봤다니 콩깍지가 씌워도 단단히 씌웠던가 보다. 내 눈의 생김새와 밝은 인상과 여성스러움이 남편의 마음에 들었다.

 

나의 첫사랑은 남편보다 키가 조금 작고, 얼마전에 깨달은 건데, 얼굴형이 비슷하다. 요즘 히트한 노래 가사 중에 널 닮은 모습의 사람을 만나서 다시 사랑을 하겠지만, 그 사람이 네가 아니어서 슬플 것 같다는 대목이 있던데, 내가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은연 중에 그렇게 생긴 사람을 선호하는지, 나도 모르게 첫사랑 닮은 사람을 사랑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가끔씩 서로의 첫사랑을 꺼내 서로를 놀려 먹는다.

"아직도 그 여자 생각나?"

"나보다 그 놈을 더 좋아하지?"

 

현재, 남편의 첫사랑이 무엇을 하며 어디서 살고 있는지를 나는 알고 있다.

남편 역시, 나의 첫사랑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첫사랑이 밑거름이 되어서 지금 남편과의 사랑을 더 잘 꾸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마음을 읽기에도,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도 너무도 서툴렀던 그때의 경험과 실패와 후회를 밑거름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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