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투덜거림 끝에 드디어 시댁으로 슝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종학당과 반야사에 들러보게 되었다.
남편은 업무 특성상 외근을 많이 하는 데다가 출장도 자주 다니고
골프도 자주 치는지라 늘 밖으로 나도는 환경이어서
어디를 놀러 다니는 데에 나와 달리 관심이 없다.
휴일이면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휴일 오전이면 또 골프 연습장에 가서 골프 연습을 하느라고 바빠서
농담으로 골프에 미친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함께 어울려 골프를 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성향 탓인지 조르고 졸라
별로 썩 내키지 않지만 아내가 가보자는 어느 장소에 가면
또 무엇을 보러 왔는데? 뭘 보려고 하는데? 하면서 생색도 엄청 내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기려고 여기저기 사진에 담는 동안
꼼꼼히 안내문 등을 읽어서 정작 나보다 더 잘 알아보고 오는 경향이 있으며
돌아오는 내내 안내문은 읽지 않고 사진만 찍는 듯한 아내에게 엄청 썰을 푸는 시간이 따라오고
사진만 찍으며 풍경에 주로 감탄하던 나는 남편의 설명에 찬사를 마구 보내는 시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나야말로 엉터리 여행자 내지는 관광객인지도 모르겠다.
호기심이 넘쳐나는 나에 비해 아내에 대한 배려로 이곳에 들린 남편은
샅샅이 크게 돌아보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그냥 한 번 쓰윽 훑어보고 마는 식이어서 때로 나의 투덜거림이 극에 달할 때가 있다.
때로는 입구에 내려주고 혼자 구경하고 오라고 할 때도 있으니
당연히 안내 푯말에 적힌 `사색의 길'일랑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
어쩌다 보니 남편에 대한 성토의 기행문이 될 조짐이 다분하다......
그래서 때로 여자들이 여자들끼리만 뭉쳐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잘 헤아리게 되며
때로는 여자 혼자 떠나게도 되는 것인데 아직까지 나 혼자 먼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어쩌면 겁 많고 소심하며 소극적인 나는 평생 그러지 못하고 늙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다분히 든다.
시댁에 갈 때면 때로 공주의 `임립미술관' 옆으로 갈 때가 있는데
평일에 시간 여유로운 나 혼자서 구경 와보라고 종용하는 말을 들으며
그럴 날 있을까 가만히 속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보면 마음대로 투덜거릴 수 있고(이유의 1순위.
세상엔 나와 마음이 딱딱 100% 맞는 이도 없으니......), 운전해 주고,
맛난 음식 좋아하는 내가 내 마음대로 메뉴를 정할 수 있으며,
길 잃어버리지 않고 척척 안내해 주고, 그렇게 설렁설렁 보는 것 같아도
내가 놓친 것에 대해 잘 설명해 주는 남편과의 여행이 가장 편안하고 좋아서
자꾸 남편에게 여행 가자고 조르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차 몇 대 댈 수 있는 자그마한 주차장에서 차에서 내리며
멋진 돌담 너머로 종학당이란 현판이 걸린 유서 깊은 듯한 한옥을 찍는다.
종학당 앞에 서서 멀리 바라보는 풍경이 참 좋았다.
이곳 일대가 파평 윤 씨 집성촌이라 하니 저 멀리 가곡저수지 너머 오른쪽으로 있는
고택도 파평 윤 씨 문중과 관련 있는 곳이려니 짐작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진은 정작 오른쪽을 당겨 찍지 않고 왼쪽만 당겨 찍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지막한 산 아래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시댁은 논산평야 들판에 있는 마을로 아늑한 감은 떨어지는 곳이라
이곳의 아늑해 보이는 풍경에 감탄했더니 반색을 하며
이곳에다 집 한 채 사면 내려와 살려느냐고 신소리를 해서
어이구! 어이구! 전국에 집이 몇 채야? 하는 나의 타박소리를 들어야 했다.
먼저 종학당으로 가보자.
뒤꼍으로 돌아가니 200년 수령의 보호수로 지정된 배롱나무 외에도
여러 그루의 노거수 배롱나무들이 종학당을 감싸며 서 있다.
그 배롱나무들의 꽃이 붉게 붉게 만개하여 붉은 세상이 되었을 때 와보아야 하는 곳이다.
초학과정은 종학당에서 이루어졌고, 상급과정은 정수루와 저 뒤로 위치한 백록당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수루에 나 홀로 올라 멀리 바라보니 대둔산 자락이 길게 보인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누각 정수루에서 멀리 바라보는 풍경의 운치가 얼마나 좋은지 계속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풍경에 빠져 있을 때는 모르다가 사진 다 찍고 돌아서 나올 때에야
삐그덕 소리도 조금 나고 밑에는 아무것도 없는 누각이라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게 되었다.
저 내삼문을 나가서 오른쪽으로 보인당이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 명문가인 파평 윤 씨 가문에서 세운 사설 문중 학교인
종학당, 정수루, 백록당, 보인당을 합쳐 이 일대를 `종학원'이라 한단다.
보인당 근처에는 구 소련 미하일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2008년 10월 2일 자
기념식수 소나무가 한 그루 있고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정수루와 백록당 보러 갈 때 왼편으로 있던 보인당에 들러보자.
보인당 뒤쪽으로 돌아갔더니 앞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ㄷ' 자 건물이었다.
정면은 찍지 않은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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