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을 나열함

향수

by 눈부신햇살* 2024. 3. 28.

 
제주도로 출장 갔던 남편이 향수를 하나 사 왔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남아 면세점을 구경하다가 마침 향수 떨어졌다는
마눌의 말이 퍼뜩 생각났단다.(기특한지고!)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저녁 준비하고 있는
내 앞에 자랑스럽게 봉투를 턱 내밀었다.
 
자신은 후각이 시원찮아 향에 대한 판단력을 믿을 수 없어
판매원의 추천을 참고 삼았는데 향을 제대로 잘 골랐는지 모르겠다며 얼른 뿌려보란다.
어, 이번 건 향이 진하네.
 
전에 쓰던 역시나 남편의 선물이었던 아닉구딸 쁘띠 쉐리 향이 나는 참 좋았다.
조금은 달콤한 듯 풋풋한 향이어서 뿌리면 산뜻한 기분이 들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무슨 향인지 딱히 집어내진 못했는데 복숭아향이 첨가된 것이라고 한다.
 
‘쁘띠 쉐리’는 복숭아, 배, 로즈 머스크 향 조합으로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연출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상큼한 과일향과 관능적인 머스크향이 조화를 이뤄 구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 내 재주로는 설명할 수 없어 이렇게 향을 설명해 놓은 것을 복사해 왔다.
 
머스크 향은 사향노루 배꼽(생식기)에서 나는 냄새라고 하는데 
예전에 헬스 끝내고 씻고 나서 머스크 향이 첨가되었다는 바디로션을 바르고 
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살 때면 그곳에서 계산하시는 분이 향기가 참 좋다고 하였다.
동물들은 자신의 배설물 향으로 이성을 유혹한다고 하는데 저런 향긋한 향으로 유혹하나 보다.
 
내가 좋아했던 향수 아닉구딸의 단점이라면 뿌리고 조금 지나면 향이 금방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후각이 예민한 편인 내가 눈살 찌푸려지도록 여러 번 뿌리지 않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차에 탈 때 옆에 앉은 남편조차도 내가 향수를 뿌렸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내게서 나는 좋은 향기가 좋았으므로 괘념치 않았다.
 
사실 향수를 나 스스로 사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언젠가도 제주 출장길에 역시나 공항 면세점에서 제주도 무슨 난 종류의 향이라는
향수를 한 개 사다 줬는데 향이 너무 진해 뿌리면 기침이 절로 나고
머리도 띵해지는 것 같아 두어 번 뿌리다가 유통기한 지나 버리게 되었다.
 
이번에 사 온 랑방 향수 역시 진한 향이긴 하지만
그전에 뿌리던 아닉구딸이 연했던 것이어서 상대적인 것이고,
아닉구딸 향의 지속 시간이 짧았다면 랑방 잔느는 지속 시간이 길어 이따금 내가 향수를 뿌렸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씩 떠올리게 해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
좋은 향기가 좋은 기분을 유지시켜 주는 기분.
 
향수를 언제쯤부터 기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더듬어보면 한 2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열성 신자는 아니었지만 주일마다 빠뜨리지 않고 교회에 나가던 시기.
예배 끝나고 교회를 나서기 전이면 목사님 부목사님 전도사님 네댓 분이
입구에 나란히 서서 배웅 인사를 하시곤 했다.
그때 고개 숙였다 드는 그 짧은 인사의 동작을 따라 부목사님에게서 좋은 향기가 퍼져오곤 했다.
풀 베고 난 후의 향 같기도 하고 아까시 꽃의 달큼한 꽃향기 같기도 하고.

 
미남 목사님 옆에 서계신 결코 미남이라고 할 수 없는 부목사님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향기였다.
다음번 인사 나누게 될 때 다시 한번 부목사님을 잘 살펴보게 되는 향기.
좋은 향기가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은 향기를 참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화장은 하지 않아도 향수는 뿌리고, 
뿌리고 난 후 내게서 솔솔 이따금 풍기는 좋은 향기에 기분 좋음을 느끼고 있다.

 

 

 
< 덧붙임 >
댓글에 대한 답글을 달다가 문득 잊고 있었던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작은아들 대학생 때 친구들과 유럽 여행 다녀오면서 파리에서
엄마의 부탁이라며 향수를 사는 친구 따라
유명 연예인들이 사용한다는 향수 중에 가장 향이 연하다는 코롱 제품을 두 개 사 왔다.
아마도 여행 간다고 해서 얼마간 찔러준 용돈에 대한 보답 차원이기도 했으리라.
 
그때나 지금이나 향수에 대해 잘 모르다가 이제야 알게 되는 것이
코롱이 향수의 가장 연한 단계라고 하니
나는 그 연한 좋은 향기에 매료되었던가 보다.
그 두 개를 다 쓰고 좋아서 직구로 직접 사기도 했었단 걸 까마득히 잊어버렸네.
 
그리고 그게 떨어져 아쉬워하던 차에 남편이 생일 선물로
향수를 사주기 시작했다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결론은 나 스스로 향수를 사기도 했었는데
그 향수 이름이 도통 생각나지 않고 정사각형 비슷한 네모난 유리병이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이제는 기억력에 자신 없는 나이인가.
참 머쓱하고 무안해진다......
 

'마음을 나열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는 추억 속으로  (22) 2024.04.06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0) 2024.03.25
산다는 것의 쓸쓸함  (0) 2024.03.18
정리가 주는 힐링  (38) 2024.02.26
남서향에 타워형  (25) 2024.02.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