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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남서향에 타워형

by 눈부신햇살* 2024. 2. 23.

 
요즘 아파트들은 죄다 높다랗게 올라가 35층에서 45층 가까이 짓는 게 예사롭다.
20층이나 25층이 최고층이었던 예전엔 5층에서 10층까지가 로열층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꼭대기층이 가장 로열층이며 따라서 분양가도 가장 세다고 한다.
 
층별로 천만 원 정도 분양가 차이가 났는데 희한하게도 6층에서부터 10층까지는 금액이 똑같았다.
조망권을 생각한다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가격의 10층이 더 나은데
우리가 원하는 동 라인의 6층 이상은 이미 다 계약되었다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6층을 분양받게 되었다.
실은 저층을 선호하는 편인데 조망권을 생각하자니 엉뚱하게도 억울한 생각이 들지 뭔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1단지와 2단지로 갈라지는 대단지 아파트이며
1단지는 35층, 2단지는 37층이 최고층이다.
1단지는 전원에 가깝고, 2단지는 도심에 딱 붙어 있어 2천만 원 정도 더 비싸다.
1단지가 전원에 더 가깝긴 하지만 2단지와 마찬가지로 도심권이어서
이곳 외곽에 살면서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차로 이동해야 했던 생활을 마감하고 
드디어 걸어서 시장, 걸어서 대형마트, 걸어서 큰 도서관, 걸어서 병원, 걸어서 식당, 걸어서 호프집,
걸어서 빵집, 게다가 걸어서 내가 좋아하는 신정호까지 뚜벅이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곳이고 
실은 내가 그 뚜벅이 생활에 너무도 익숙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이곳에서 4년가량 살게 되면서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전원형이 아닌 도시형 여자였던 것이다......
 
이런저런 복합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나의 소망이었던 전원주택의 꿈을 포기하게 되면서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곳을 공원화하며 그 속에다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데
미분양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도 분양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길래 모델 하우스에 가보게 되었다.
 
노년에 자그마한 평수에서 살자고 마음 맞추고 갔으나 웬걸 작은 30평과 32평은 모두 나가고
국민평형이라는 34평과 그보다 큰 38평형과 58평형만 남아 있어 아쉬웠으나
막상 모델 하우스를 보자니 같은 평수여도 4베이 판상형은 지금 집(같은 평수의 4베이 판상형) 보다 더 넓어 보이고
타워형은 서류상으로 4베이 판상형보다 아주 조금 더 넓은 평수였지만 육안으로는 더 작아 보였다.
 
가격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맞바람 치고 햇볕 고루 잘 들어
가장 선호한다는 판상형이 타워형보다 2천만 원 정도가 더 나간다.
그러나 방과 거실이 한 방향으로 늘어서 있고 우리에게 익숙한 판상형보다
오밀조밀한 느낌의 타워형이 더 아늑해 보이고 내부가 더 구분되는 듯한 새로운 느낌이 들어
아들들 모두 출가하여 넓은 거실과 주방이 그다지 필요 없는 우리는 타워형을 골랐다.
 
요즘은 모두 발코니가 확장되어 나오고 천장형 에어컨과 천장형 공기 청정기에
현관엔 3연동 자동 중문이 달리고, 주방은 식기세척기에 오븐에 인덕션인 줄 알았지만
그 모든 것은 유상 옵션이며 추가로 신청해야 되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주방 붙박이장의 슬라이딩 수납장은 물론이고, 바닥재(기본이 강마루, 추가 선택은 포쉐린 타일과 원목마루)와
벽지 마감(포쉐린 타일과 원목 판넬과 실크벽지 등등), 거실 무드등까지 모델 하우스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모두 스타일업 해놓은 형태이고 그걸 보고서 선택하라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필요한 몇 가지를 추가하다 보면 기본 분양가에 유상 옵션비가 꽤 달라붙지만
그 모든 것이 편리하고 세련된 느낌이라 망설임 끝에 결국은 유상 옵션을 신청하게 된다.
`견물생심'이라면 적절한 표현일까?

 

 

타워형 평면도

 

판상형 평면도


그리고 또 남아 있는 평형 중에 동남향과 남서향을 두고 고를 때 우리는 주저함 없이 남서향을 고르게 되었다.
일산 집은 남서향이었고, 지금 집은 동남향인데 남서향 집이 훨씬 밝은 느낌이며
겨울날 햇빛도 늦게까지 집안으로 들어와 더 따뜻해서 난방비도 더 적게 나온다.
각 방향에 드는 일조 시간은 비슷하다 해도 겨울날 아침은 흐렸다가
11시 즈음부터 개는 날이 많아 동남향 집이 조금 더 춥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햇빛 쏟아지는 여름엔 동남향보다 남서향 집이 더 더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살면서 큰 차이는 못 느꼈고, 결론은 겨울철 가스 난방비가 여름철 에어컨 냉방비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에어컨은 8월 한 달만 바짝 틀면 되지만 겨울 난방비는 12·1·2월 석 달을 내야 되지 않은가.
 
사실 정남향 집이 최고이겠지만 아쉽게도 요즘은 웬만해선 정남향으로 짓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한쪽 방향을 일제히 바라보며 늘어서 있는 성냥갑형 아파트보다 보기에도 더 좋고,
특정 동(주로 앞 동)만 일조권과 조망권을 누리기 때문에 방향을 살짝 틀어 앉혀
입주민들이 고르게 일조권과 조망권을 누릴 수 있도록 동남향과 남서향 중에서 고르게 한다고 한다.
개인의 취향이니까 아침형인 사람들은 아침 햇빛이 일찍 들어오는 동남향을 선호할 수도 있겠다.
 
유튜브 동영상으로 층별 조망권을 보여주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일조권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데 동과 라인을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피트니스클럽과 작은 도서관 등 여러 편의시설도 아파트 건물 지하로 다 들어서네.
다른 동 꼭대기 층에는 카페도 들어서니 전망은 그곳에 가서 즐기면 될 것 같고.
 
3베이 판상형과 4베이 판상형에서만 살다가 타워형은 앞으로 2년 뒤 처음으로 살아보게 되는 것이다.
3베이 판상형의 단점은 방 2개와 거실 방향이 좋아도 나머지 작은 방 하나가 나쁜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볕이 들지 않으므로 가장 좋은 것은 방 3개와 거실이 모두 한쪽 방향인  4베이 판상형인 것 같다.
 
타워형 역시 아무리 방향이 좋아도 거실과 안방을 제외한 작은 방 두 개의 위치가 별로인 점이 마음에 걸린다.
아무튼 남서향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치우친 남남서향이라고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햇살은 마음껏 누릴 수 있을 테고,
더불어 서쪽으로 더 치우친 북서서향 작은 방에선 지금 이 집에서처럼 일몰을 잘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일산으로 올라가게 될 줄 알았지만 남편은 앞으로 몇 년 간 더 근무하게 되었고,
내놓은 일산 집이 팔리고 나면 남편처럼  나 역시 서류상으로도 확실한 아산 시민이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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