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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묵은 해를 보내는 방법

by 눈부신햇살* 2024. 1. 4.

 
연말을 보름쯤 앞두고 안부 전화를 걸어온 작은아이가 연말인데 가족끼리 모여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전에 일산집에 생긴 어떤 일로 통화를 하게 된 남편과 큰아이의 대화 내용을 들으니
설에나  보자며 서로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데
그걸로 미루어 보아 우리도 설날에나 보게 되지 않을까 답했다.
 
작은아이가 설은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다며 깜짝 놀란다.
가족이 자주 얼굴을 보아야 되지 않겠느냐며.
그리하여 연말엔 우리 가족 다섯 명이 아산 집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보내게 되었다.
 
서울에 아홉 날이나 머물다가 온 나는 내려오자마자 연말모임 음식 준비로 부산을 떨어야 했다.
마트에도 농산물 가짓수가 많은 하나로마트와 육류가 풍부하게 구비되어 있는 이마트를 번갈아 다녀왔으며
생선회는 횟집에 따로 다녀올 요량이었으나 남편과 함께 세 번째 준비로 들렀던 마트에
아이들이 내려오는 당일 오전에 막 떠다가 진열하는 회를 보고 두 접시 사 오게 되었다.
 
그렇게 부산을 떨어 LA갈비 재고, 잡채 만들고, 몇 가지 반찬 만들었는데
항상 상에 차려 놓으면 왜 빈약함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내 손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맛있게 잘 먹었으며 돌아갈 때는 빈손으로 가면 허전하니
또 들려 보내려고 넉넉하게 준비해야 해서 감기 같은 것은 잘 걸리지 않는 나(그래서 독감 예방 접종도 하지 않지만)이지만
지금까지 왠지 모를 몸살기가 온몸을 나른하게 만들고 있다.
 

 
큰아들 부부가 집 근처에 새로운 명소 `밤리단길(경리단길을 딴 이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긴다.
친구네 동네 송파에는 송리단길이 있다던데)'이 생겼다며
(일산의 번화가였던 라페스타는 한산하기 짝이 없는 죽은 상권이 되었단다)
그곳 유명한 빵집에서 우리 가족이 엄청 좋아하는 피낭시에와 마들렌을 각 한 상자씩 사 오고,
작은아들은 예전에 연봉 오른 기념으로 한턱냈던 오마카세 집에서 마시며
내가 맛있다고 했던 것을 잊지 않고 그때와 같은 화이트 와인을 사 왔다.
비싼 레드 와인도 한 병 더 사 왔으나 역시나 화이트 와인이 깔끔하니 더 좋았다.
 
 

 
그날 마침 남편의 포항 지인으로부터 딱 맞춰 과메기 한 상자가 배달되었다.
나는 비린 맛에 그다지 당기는 맛이 아니었으나 며느리는 익숙한 맛 청어와 비슷하다며 잘 먹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시간.
4월이면 큰아들이 새로 지은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나갈 것이고,
아이도 가질 계획이고, 그 아이들이 크면 교육조건과 환경이 더 나은,
게다가 대학교까지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벨기에로 가서 살 마음도 있다고 해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무식한 말이 훅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럼, 우리는 손주를 자주 볼 수 없는 거야?"
나는 이 말을 나중에 참 후회했다.
자식의 인생이 우선인데, 내가 왜 그런 참견을 했을까......
아들과 며느리가 그저 그런 방법도 생각해 보았을 뿐이라고 변명을 하게 만들었네......
 
하룻밤 묵고, 일 년의 마지막 날 아침엔 사골 국물에 떡만둣국을 끓여 먹고
차 한 잔 마신 후 차 막히기 전에 서둘러 가라며 쫓다시피 아들들을 보내는 남편.
배웅하고 돌아선 마음이 어찌나 허전하든지 한참 동안 힘들었다.
그 마음을 달래려 신정호로 달려갔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올라온 고향 마을 근처의 새해 첫날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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