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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

by 눈부신햇살* 2024. 2. 5.

 

 

제주도 소인국테마파크에서

 

 

 

서울에 가서 세 자매가 친정집에 모여 놀던 날,

앨범을 들추다 오래된 사진 속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간간이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그중 엄마 칠순기념 제주도 여행.

보기 드물게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엄마가 지금보다 훨씬 젊고 곱다.

저때는 저때대로 우리 엄마가 벌써 칠순이라니, 믿기지 않았고 무척 연세가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엄마가 벌써 올해로 여든 하고도 두 해가 되었다.

 

저때로부터 1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나브로 살이 빠져

골격만 남은 것 같은 지금의 모습은 뵐 때마다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속 엄마를 보며 "그때만 해도 우리 엄마 젊었네! 통통하셨었네!" 딸들의 감탄사가 난무한다.

예전엔 어디 가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매번 듣게 되는 왜 이렇게 살이 빠졌느냐는 인사가 스트레스로 돌아올 때도 있다고 하신다.

 

한편으론 그렇게 여위어지셨어도 아직까지 1만 보쯤은 수월하게 걸으실 수 있어서

느리게나마 딸들과 함께 친정 동네 야산에 오르고 꽤 먼 곳의 시장을 보러 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내 옆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저 꼬마 숙녀 조카가 올해 대학교를 졸업한다.

정말로 세월이 쏜 화살 같이 흘러가 한창 멋 내기에 열중하는 빛나는 청춘이 되었다.

 

여행 가던 해에 마흔일곱이던 나는 올해 60이 되어야 하나,

고맙게도 우리나라도 이제 만 나이로 셈한다고 해서 올해 쉰아홉이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아직 생일을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쉰여덟. 음하하핫!

얼마 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제 나이를 이렇게 말해야 할지 저렇게 말해야 할지

혼돈스럽다고 했더니 그래서 요즘은 "몇 년 생이예요?" 하고 묻는대나.

 

풍성하던 머리숱도 줄어들고, 윤기 나던 머리칼은 가늘어지며 푸석해지고,

눈에 띄게 흰머리카락이 늘었으며, 입가에도 팔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종이장처럼 얇아지고,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자주 되묻게 되고,

연고나 알약 상자에 적혀 있는 깨알 같은 글씨는 휴대폰으로 찍어 확대하여 보게 되었으며,

밤에 책이라도 몇 줄 읽을라치면 아롱거려서 미간에 인상을 잔뜩 쓰게 된다.

뭐 하나 새로운 거 습득하려면 오래 걸리고 덜컥 겁부터 난다.

그뿐이랴. 눈부신 햇살 밑이나 부는 바람 속으로 나서면 여지없이 눈물도 난다.

 

나 역시 지금보다 무척 젊어 보이는 사진 속의 나를 보며 

이런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옆에서 남편이 한 마디 던진다.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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