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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하필이면······

by 눈부신햇살* 2023. 10. 3.

 

추석 쇠러 시골 시댁에 가기 전, 먼저 선산이 아니고 추모공원에 홀로 따로 모셔진 아버님 산소에 들렀다.
웬 꽃이 피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버섯이었다.
사진을 찍는 내게
"이젠 버섯에도 관심 있으세요?"
나를 웃게 만드는 작은아들의 농담 한 마디.
 

 

시골집에 당도하니 마당가에 참취 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그 옆엔 여뀌도 피었고,
 

 

 

담장 위엔 생전 처음 보는 `인디언 감자꽃'도 넝쿨로 피어 있다.

 
 

 
하필이면 많은 다른 날 다 놔두고 추석 무렵에 코로나에 걸릴 건 무언지.
감기인 줄 알았다가 혹시나 하고 해 본 남편의 코로나 자가검진 키트에 선명한 빨간색 두 줄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벌써 나흘째이고 시어머님은 이미 세 번이나 감염되셨었고,
나머지 다른 식구들도 다 걸렸었으므로 마스크 쓰고 활동하면 치명적이지 않을 테니 상관없다고
전화로 시동생과 마음을 맞추더니 시골 가는 것을 강행했다.
 
내가 집에서 미리 밑 작업을 해간 전 종류를 시댁에서 동서와 함께 부치는 와중에
뒤늦게 설마 했던 코로나 증상, 열이 오르고 두통이 있으며 여기저기 욱신거리는 근육통이 시작되었다.
분명 아침에 코로나 검사 키트에 한 줄이어서 시골에 오게 되었는데,
몸도 지극히 멀쩡해서 어떤 다른 핑계를 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조금만 더 일찍 발현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
 
그 저녁 삼겹살 구워 먹는 환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마스크 쓰고 옆에 앉아 저녁을 굶었다.
내 사전에 굶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인데......
빈말로라도 내게 밥 한 번 권하지 않는 것은 모두 다 나를 위한 배려인가,
알 듯 모를 듯 묘한 서운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야......
 
추석날엔 다른 식구들에게 전염시킬까 봐
따로 쟁반에 간단히 차려 방에서 나 혼자 밥을 먹었다.
열로 인해 입맛이 뚝 떨어져 식욕이 전혀 일지 않았지만 약을 먹어야 해서.
 
추석 당일 성묘 다녀오고 점심 식사 후 모두 흩어져 갈 때,
아직 코로나 무감염자이신 친정 엄마에게 전염될까 봐
친정에 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바라본 밤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하다.
평소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데 코로나로 인해 열에 들떠
몽롱한 상태로 바라본 하늘이 딱 내 마음과 같았다.
약기운 떨어지면 다시 오르는 열과 욱신거리는 근육통으로 무기력하게 고스란히 보냈던 우울한 명절 연휴.
남들은 무증상으로도 많이 지나쳤다는데 남편과 나는 심하게 앓은 편이고,
특히 남편은 열과 가래의 정도가 나보다 더 심했다.
하지만 어쩐지 나는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코로나였네......
솟아오르는 열 속에 우울함이 가득 들어 있었나 봐.
 
 
 

먹구름으로 온전한 달 구경 하기 힘들 줄 알았더니
한참만에 다시 내다본 밤하늘에 둥근달이 둥실 떠있었다.
 

 

 
                    이 원 수
 
너도 보이지
오리나무 잎사귀에 흩어져 앉아
바람에 몸 흔들며 춤추는 달이
 
너도 들리지 
시냇물에 반짝반짝 은부스러기
흘러가며 조잘거리는 달의 노래가
 
그래도 그래도
너는 모른다
둥그런 저 달을 온통 네 품에
안겨 주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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