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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아직 남은 여름, 어느 하루

by 눈부신햇살* 2023. 8. 21.

일주일에 세네 번 정도 1시간 20분 정도씩 헬스를 하고 있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휴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주말과 휴일에 밥 챙기느라 힘들었던(ㅋㅋ... 대단치도 않게 차리면서...),
아니면 친정이나 시댁에 다녀오느라고 바빴거나
예정된 어떤 행사를 치르느라 분주했던 나를 위한
어쩐지 나만의 휴일이 된 느낌에 헬스를 빼먹는데 그게 편안한 마음이다가
께름칙한 마음이다가 이내 포기하는 마음이 되곤 한다.
그러다가 또 저녁엔 저녁대로 신정호에 가서 1시간씩 빠르게 걷기도 하니까
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한다. `하루에 두 시간씩 운동하는 셈이잖아' 하면서......
 
어느 날 분리배출을 마치고 운동하러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 한참 달리다 보니
종아리에서 뭔가 스멀스멀 거리는 느낌이 왔다.
내려다보니 작은 송장메뚜기 같은 것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털어냈는데 털어내 봤자 그것이 어디로 가겠는가.
차 안 어디쯤으로 떨어졌겠지.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고, 운전 중이라 그냥 내처 달려야 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론 온통 메뚜기 생각뿐이었다.
어디서 들어왔지? 어떻게 들어왔지?
분리배출하러 가는 길에 옷에 붙었다가 따라 들어왔나 보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길래 잡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곤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음날 오전 운동하러 가면서 무심코 차 귀퉁이에 시선이 갔다가 으악!
이건 또 뭔 일이래.
쟤가 왜 저기에 떡하니 앉아 있는 거야?
어제 그렇게 찾을 땐 보이지도 않더니.....
그러나 나는 지금 운전 중. 신호대기 중에 사진 한 장 냉큼 찍었다.
 

심란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쟤는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바꿔가며 저기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면서.
나는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제발 어디로 숨지나 말아라 하면서 달렸다.
 

주차장에 도착해 메뚜기를 창밖에서 찍어 기념사진(^^)으로 남긴다.
 

그리고 옆쪽에서 잡아 밖으로 날려주려는데 어라~! 얘가 내 손을 피한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정면에서 잡아 얼른 날려 주려고 손을 털어내는데
이건 또 무슨 일.
수많은 갈고리 내지는 찍찍이를 장착한 듯한(그런 다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다리로
내 손가락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다.
놀란 나는 어, 어, 비명을 지르며 더 열심히 손을 사정없이 마구 흔들어 털어내기 바빴다.
멀리서 누군가 나를 보았다면?ㅎㅎ
아주 짧은 순간인데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 지나고
마침내 내 손에서 떨어져 나가 날아갈 때의 그 기쁨.
잘 살아라~!
 
그리고 몸을 풀기 위한 준비운동으로 러닝머신에서 빠르게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작은 일에도 크게 놀라는 새가슴을 가진,
그것 때문에 때론 상대방에게 원성을 듣기까지 하는 유형. 
"헉!" 새된 비명 소리가 터져 나가고 이어 덧붙여 나도 모르게 "깜짝이야!"도 외쳤다.
헬스장의 모든 사람이 들을만한 정도의 비명이었다.
그러고 나서 바라보니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내게 인사를 건네고 계신다.
"이제 오셨수?"
그러다가 너무나 놀라는 내 모습과 외마디 비명에 머쓱해지셔서
"깜짝이야?"
하고 반문하신다. 얼추 정신 수습한 나는 금방 죄송스러워진 마음에
"아, 제가 너무 몰두하고 있어서...... (운동) 다 하셨어요?"
 
그 어르신은 내게 가장 열심히 인사 건네는 분이시다.
얼굴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게 건네시는 말씀이 이 헬스장에서 걷는 모습이 내가 가장 바르단다.
똑바로 걷는 모습이 아주 멋지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해 주셨다.
그날 이후로도 항상 먼저 인사 건네주셔서 나 역시 가장 충실하게 인사 건네게 되는 한 분이시다.
너무 놀란 게 죄송스러워서 가신다는 인사에 활짝 웃는 얼굴로 답해 드렸다.
 
 

운동 끝나고 신정호 둘레로 가서 옥수수를 네 개들이 한 봉지에 5천 원짜리 두 봉지 사고,
꽈배기 집에 들러 찹쌀 도넛 4개에 3천 원짜리와 큰 팥도넛 1개에 천 원짜리 두 개를 사서 5천 원을 지불했다.
봉지에 담아주는데 내 것이 아닌 것도 들어가는 느낌에 
"모두 다 제 거예요?"
하고 물으니 당연하다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 나를 쳐다보며 짧게 "네." 대답하며 건네주는 것이었다.
나는 갸웃하며 
"생각보다 양이 많네요."
하면서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봉지를 연신 들여다보다가 차에 탔다.
차가 오고 가는 상황을 지켜보다 출발하려는데 톡톡 창을 두드리는 소리.
잘 못 준거 같다, 다시 확인하더니 한 봉지를 빼간다. 
"어쩐지 이상했어요."
죄송하다는 말에 나는 후련한 마음이 되어 
"괜찮아요.".
 
 

그날의 점심은 아침에 밭에서 따다가 막 쪄낸 말랑말랑 야들야들 찰진 어린 옥수수 2개와
찹쌀도넛 한 개와 골드 키위 한 개.
신맛이 거의 없이 달고 맛있는 제법 큰 사이즈의 뉴질랜드산 골드 키위가 7개에 9,900원. 
땀 흠뻑 흘린 운동 후라 그 모든 것이 아주 꿀맛이었다.
 
 
 < 덧붙임 > - 8월 23일

어제는 운동 끝내고 돌아가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창밖으로 우연히 바라보게 되었다.

밀짚모자 재질의 중절모와 하늘색 마 재질인 듯한 셔츠에 감색 바지, 작은 가방을 들고 가신다.

오홀~! 꽤 멋쟁이셨네!

걸어서 운동하러 오시는 줄 알았더니 운전해서 오시는구나.

 

오늘은 가장 오른쪽 러닝머신 위에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한 칸 건너의 러닝머신에 오르면서 쳐다보았더니 마주 쳐다보신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지난번에 많이 놀랐냐고 물어오신다.

제가 원래 잘 놀란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주절주절 미안함의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마무리 걷기 운동이셨는지 조금 있다 가시며 환하게 인사하고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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