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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지난 엿새 동안

by 눈부신햇살* 2023. 8. 7.

어제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를 보는데 기안84가 스쳐가듯 무심하게 말했다.
"젊어서 고생하면 골병든다"
무척 공감되는 말이었다.
젊어서 몸 사리지 않고 남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열심히 농사일을 하시는 탓에
여장부라 불렸던 88세 지금의 우리 어머님은 
허리는 굽고 다리와 손가락은 관절염으로 성하신 데가 별로 없다.
허리와 양다리에 큰 수술을 하시고 재활치료도 하셨지만 별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장마통 물난리로 둘째 형님네로 일주일 동안 피신하셨던 어머님이
이번엔 발등이 붓고 통증이 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나 작은 시누이가 모시고 가서 
통원 치료를 받고 이어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서 엿새 동안 묵게 되셨다.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시니 답답하실 어머님을 위해 신정호로 산책을 나갔다.
코에 바람 쐬니 가슴이 트이는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다음 날도 또 나갔다.
 

 

꼬리조팝나무

 

 

 

하얗게 피어난 목수국을 보고 연신 예쁘다며 감탄하신다.
시골집의 수국(실은 불두화)만 하얗게 몽실몽실 주렁주렁 매달려
퍽 예쁜 줄 알았더니 이 수국도 참 예쁘다고 하신다. 
이름을 알려 드리자 수국이 한 가지인 줄 알았는데 여러 가지냐고 물으신다.
 

지금은 한창 배롱나무의 계절이라 곳곳의 배롱나무 꽃도 어여쁘고......
 

 

 

 

호수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하고,
어떤 날 지는 해는 이렇게 호수를 붉게 물들이기도 했다.
 

 

 

 

 

나흘째 되는 날엔 연일 뉴스에서 몇 도까지 올랐다고 보도해 주는
푹푹 찌는 폭염이라 시원한 집안에서 보내기로 했다.
무더위가 빚어내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뉴스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염려도 하고......
셋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 보내는 저녁 시간.
 
 

 

닷새째인 금요일엔 외암마을에 갔었다.
여기저기 능소화가 한창이었고 오래된 돌담과 잘 어우러졌다.
 

 

초록의 논에서 풍겨오는 벼 냄새를 말씀하신다.
한여름날의 냄새?
 
 

 

 

 

 

 

 

 

 

 

무슨 나무 열매일까?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남짓 달려가는 거리의 외암마을을 서울의 어디쯤으로 생각하시는 어머니.
올봄 먼 길을 떠나버린 당신의 큰아들이 이따금 사진 찍으러 온 곳이라는 걸 
아시는 순간 그만 뭉클해져 버린 어머님은 내색도 못하시다가
그 저녁에 소화제 드시고 매실원액 희석한 물 드시고 주무셨다.
 
토요일에 모시러 온 시동생과 이곳 아산의 맛집이라고 생각하는
여름날이면 더 길게 줄 서는 진주냉면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가시면서
삼시세끼 밥 차려 주고, 과일 깎아다 드리고, 커피 타드려서
혼자 몸으로는 마음은 있어도 불편하여 포기하게 되던 것들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으니 참 좋았노라고 말씀하시며 가셨다.
 
두 시간 후에 cctv로 보게 되는 시골집에 도착한 어머님이 왠지 쓸쓸해 보여서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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