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강
류 시 화
그 여름 강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를 처음 사랑하게 되었지
물속에 잠긴 발이 신비롭다고 느꼈지
검은 돌들 틈에서 흰 발가락이 움직이며
은어처럼 헤엄치는 듯했지
너에 대한 다른 것들은 잊어도
그것은 잊을 수 없지
이후에도 너를 사랑하게 된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첫사랑의 강
물푸레나무 옆에서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지
많은 여름들이 지나고 나 혼자
그 강에 갔었지
그리고 두 발을 물에 담그고
그 자리에 앉아 보았지
환영처럼 물속에 너의 두 발이 나타났지
물에 비친 물푸레나무 검은 그림자 사이로
그 희고 작은 발이
나도 모르게 그 발을 만지려고
물속에 손을 넣었지
우리를 만지는 손이 불에 데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기억을 꺼내다가 그 불에 데지 않는다면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때 나는 알았지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우리가 한때 있던 그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고
떠나온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니가 좋으면
김 해 자
가끔 찾아와 물들이는 말이 있다
두레박 만난 우물처럼 빙그레 퍼져나가는 말
전생만큼이나 아득한 옛날 푸른 이파리 위에
붉은 돌 찧어 뿌리고 토끼풀꽃 몇 송이 얹어
머시마가 공손히 차려준 손바닥만한 돌 밥상 앞에서
이뻐, 맛있어, 좋아,
안 먹고도 냠냠 먹던 소꿉장난처럼
덜 자란 풀꽃 붉게 물들이던 말
덩달아 사금파리도 반작 빛나게 하던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말한 게 다인 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말
나만 얻어먹고 되돌려주지 못한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붉은 돌에 오소록 새겨진
흰 구름
헤르만 헤세
오, 보라! 오늘도 흰 구름은 흐른다
잊혀진 고운 노래의
나직한 멜로디처럼
푸른 하늘 저편으로 흘러만 간다
기나긴 방황 끝에
온갖 슬픔과 기쁨
사무치게 맛본 자만이
흘러가는 저 구름 이해할 수 있으리
햇빛과 바다와 바람과 같이
가없이 투명한 것들을 난 사랑한다
그것은 고향 떠난 나그네의
자매이며 천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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