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날엔 저녁을 먹고 조금 선선해지는 시간, 7시가 가까워질 무렵에나 집을 나선다.
해가 길어서 그 시간에 가도 이렇게 환한지라 여름 꽃들의 어여쁨을 잘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연꽃들은 해 질 무렵이면 이미 꽃송이를 오므리고 있어서
연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땡볕 아래로 나서야 되리라.
언제 쨍한 햇볕 아래 구슬땀을 줄줄 흘리며 연꽃 구경을 해야 하려나...

장마철이라 덥고 습한 날의 연속이다 보니 호수를 한 바퀴 돌다 보면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어떤 날엔 드물게 바람이 솔솔 살랑이며 불어와 옷깃을 날리고 머리카락을 헤적일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시원한 바람 따라 마음도 살랑살랑 춤을 춘다.
바람결 따라 이런저런 얘기를 날려 보내다가 까르르 웃음을 함께 날려 보내기도 하고,
웃음과 수다가 주는 청량함에 바람 타고 걷는 듯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그런 날.
여름날 저녁에 산책하노라면 때로 랭보의 <감각>이란 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아마도 "여름날 푸른 저녁 나는 들길을 걸어가리라'는 시구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감 각 / 아르튀르 랭보
여름날 푸른 저녁 나는 들길을 걸어가리라,
밀 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몽상가가 되어 발끝에 시원함을 느끼며
바람에 내 맨머리를 감기우리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지만 끝없는 사랑만이 내 영혼에서 솟아나리라.
나는 멀리멀리 가리라, 보헤미안처럼.
여인과 함께 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 아르튀르 랭보(1854~1891) : 프랑스 시인.
동성 연인이었던 시인 베를렌이 붙여준 랭보의 별명은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랭보로 나오는 `토탈 이클립스(1995년)'라는 영화를 보았다.
Total Eclipse는 태양이 달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천재 시인의 기이한 행동에 연신 놀랐던 영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모에도 연신 놀랐던 영화라는 평이 있던데,
다른 누군가는 `로미오와 줄리엣(1996년)'에서의 미모가 더 돋보인다고도 하고,
나는 `타이타닉(1997년)'에서 가장 빛났던 것 같다는 생각.

오며 가며 보게 되는 능소화는 그새 더 주렁주렁 주황빛 나팔 같은 꽃송이를 매달았다.
꽃과 줄기를 이으며 함께 감싸는 꽃받침은 연둣빛과 노란색이 뒤섞여
기다란 종처럼 보이고 그 끝은 다시 다섯 갈래로 깊이 갈라져 있다.
바람이 불고 비라도 몹시 내리면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이 능소화 꽃송이는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언제까지고 바라보게 된다.
그러노라면 마치 꽃받침이 내는 연둣빛 종소리와
꽃송이가 부는 주홍빛 나팔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을 듯싶다.
이렇게 무더위 속에서 피는 능소화는 오래오래 꽃을 볼 수 있고
지는 모습이 추하지 않아 더욱더 좋다.
- 이유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 중에서
정말로 꽃줄기를 늘어뜨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서
주홍색 꽃송이를 통째로 떨어뜨린 자리도 화사하고 예쁜 능소화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꼭 한 번씩 사진에 담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은 별로 없다. 찍고 지우고, 찍고 지우고......
그나마 살아남은 사진이지만 저 사진도 그닥 맘에 들진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 장 찍고 후다닥 뛰어가고, 또 한 장 찍고 후다닥 뛰어가면서 뭘.... 하는 생각.
연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박격포 같은 렌즈에 삼각대 들고 와서
오랫동안 신중하게 연꽃을 사진에 담는 분들을 자주 뵌다.
연꽃잎을 오므리는 시간에 왜? 하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에 사진이 더 잘 찍히는 시간인가 싶기도 하고......
이어 덧붙이자면
다섯 갈래로 벌어진 꽃 속으로 한 개의 암술과 네 개의 수술이 드러나는데
이 노란 수술은 끝이 구부러져 있다.
이 수술 끝에 달리는 꽃가루에는 갈고리 같은 것이 있으므로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간혹 능소화의 꿀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능소화의 성분상으로 전혀 독이 없는 식물이고 보면
이는 꿀보다는 꿀에 섞인 꽃가루 때문일 것이다.
더 덧붙이자면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이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혹 상민의 집에서 이 나무가 발견되면 관가로 잡아가 곤장을 때려
다시는 심지 못하게 엄벌을 내렸다. 그래서 이 능소화의 별병이 양반꽃이라고 하니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 능소화의 수려함에 비해
그리 흔히 볼 수 없는 것으로 보면 꽤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능소화는 한자어로 능가할 능, 또는 업신여길 `능(凌)'자이고 소는 하늘 `소(霄)'이고 보면
하늘 같은 양반을 능가하고 업신여길 것을 염려해서일까, 지역에 따라서는 능소화 대신
금등화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는 능소화를 `차이니즈 트럼펫 클리퍼'라고 부르는데
이 꽃을 보고 트럼펫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고 느끼는 것은 같은 모양이다.
- 시대가 바뀌어서일까, 지금은 능소화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시골 시댁에 가다가 도로 중앙 분리대 화단에 한 줄로
나란히 심어 놓은 능소화를 보며 그 센스에 감탄한 적도 있다.




햇살 눈부신 날에 더욱 눈부신 꽃들



새로 뜨는 핫플레이스라고나 할까.
부처꽃이 화사하게 피어나자 사람들은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너도 나도 사진에 자신의 모습과 함께 담아가느라
웃음이 떠나지 않는 장소가 되었네.

부처꽃은 물을 아주 좋아하여 물가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두 포기 있으면 그저 그렇다가도
여러 포기가 모여 있으면 금세 화려한 꽃 무리로 변신을 한다.
꽃 색도 진분홍이어서 여간 인상적인 것이 아니다.
높이는 대략 1미터 정도 자라는데 곧게 올라가는 네모진 줄기가 많이 갈라지고,
잎자루도 거의 없는 피침형의 잎들이 서로 마주 난다.
꽃은 한여름에 핀다.
- 이유미 <한국의 야생화> 중에서

그리고 우리 집에선 이렇게 소엽풍란의 꽃이 피어 향기를 폴폴 날리고 있다.
6월 하순에 화분에 물주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꽃망울들.
이 콩나물 같은 것들은 뭐야? 하면서 보았던 꽃망울들이 하나둘 터져 가고
어느 날은 마치 향수 제품 같은 진한 향기를 뿜어내기 시작하였다.


7월 3일 드디어 모든 꽃망울이 활짝 열렸다.
'신정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여름날의 일상 (36) | 2023.07.22 |
---|---|
달콤한 7월을 당신께 (36) | 2023.07.11 |
피어나는 여름꽃들 (0) | 2023.06.30 |
꽃길 (28) | 2023.05.31 |
장미꽃 피어 아름다운 5월 (42) | 2023.05.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