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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유월이 가기 전에

by 눈부신햇살* 2023. 6. 27.

유월이 가기 전에 마무리지어야 할 농사를 도우러 6월 셋째 주말에 시골 시댁에 갔었다.
 

이 날 30도를 웃도는 폭염이었다.
정말로 등에 쏟아지는 햇볕이 따끈따끈하고 땅에서는 후끈후끈 지열이 올라왔다.
얼굴에선 저절로 땀이 뚝뚝, 등줄기에선 또르르 흘러내렸다.
 
예전엔 햇볕 무서운 줄 모르고 맨살을 잘 드러내곤 했지만 이젠 땡볕은 무섭다.
한 번 타고나면 좀처럼 잘 하얘지지 않아서 겨울이 오도록 시커멓다 보니 
팔엔 토시, 목엔 수건, 모자와 장갑도 필수다.
손등도 어찌나 잘 타던지.
대신 언제나 다리만큼은 내어놓고 광합성을 한다.^^
 

 

 

포도송이도 새들의 피해를 받지 않고 무사히 맛있게 잘 익으라고 종이봉지를 씌워 주었다.

 

지난번 시골에 왔을 때에 하지 무렵엔 감자를 캐야 된다고 했다.
지난번에 와서 양파 캘 때에 알이 좀 더 굵어지라고 양파를 수확하지 않고 놔두었더니
양파알이 굵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 한 번 올 때마다 녹아 없어진다고
모든 것이 수확의 때가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감자를 꼭 그때에 캐야 되는 이유는
무어냐고 여쭈었더니 하지가 지나면 굼벵이들이 파먹기도 하고
장마철이 오면 썩기도 하니까 미리 수확해야 한다고 한다.
 
하긴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는 속담도 있다고 하니까.
장마가 시작되어서 이때는 구름만 지나가도 비가 온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 이런 속담도 있네.
"하짓날은 감자 캐 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
하지가 지나면 보리가 마르고 알이 잘 배지 않으니 빨리 수확하고,
감자 싹이 죽기 전에 감자를 캐서 먹으라는 의미라고 한다.
 

사실, 어머니는 이렇게 일하시면 안 되는데 무리를 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생전처음 캐보는 감자 캐기는 퍽 재미있었다.
이랑의 흙을 요리조리 호미로 파헤치며 씨알 굵은 감자가 나올 적엔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맨발로 보드라운 흙을 밟는 기분도 참 좋았다.
어찌나 몰두해서 일을 했던지 시아주버님이 나더러 시골 사람 같다는 말씀을 다 하셨다.
때로 나도 나에게 놀란다.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이렇게 여섯 상자를 수확했다.
시동생이 유튜브로 공부하면서 농사를 짓다 보니 예전보다 농작물들이 훨씬 굵고 튼실하다.
 

 

아이들 어릴 적엔 껍질을 벗겨 소금과 뉴슈가를 조금 넣고 간 맞춰
뽀얗게 분이 올라오도록 포슬포슬하게 한 냄비씩 찌곤 했지만
이젠 그렇게 먹을 사람도 없어
그냥 껍질채 요정도만 쪘는 데도 몇 개 못 먹고 냉장고로 들어갔다.
옆집에도 햇감자니 먹어보라고 나눠주었고,
아들들에게도 조금 나눠줄 것이고(많이 주면 처치곤란일 테니까),
나머지는 남편이 전 중에서 최고로 치는 감자전을 주로 부치겠지.
그럴 때면 지평막걸리를 꼭 한두 잔씩 마시게 될 테고......

 

지난번에 수확해서 가져온 양파와 조금 더 산 햇양파로 이렇게 담가서
저 유리병 것을 큰아들네에 들를 일이 있어 가져다주었다.
위에서 내려찍어서 작아 보이지 제법 큰 병이다.
 
심심하게 담근 양파장아찌는 아삭아삭한 게 참 맛나다는 나의 말에
올해 처음 양파장아찌에 도전한 동서도 그 맛에 반했다.
요번엔 마늘을 가져왔으니 당연히 마늘장아찌를 커다란 유리병에 가득 담갔다.
작은아들이 간장 넣지 않고 소금과 식초와 설탕으로 비율 맞춰 심심하게 담근 마늘장아찌를 무척 좋아한다.
나 역시 간장 넣어 거무스름한 마늘장아찌보다 소금으로 간 맞춰 뽀얀 마늘장아찌를 더 선호한다.
 
하루 온종일을 투자해 마늘을 까느라 등과 어깨가 결리고
햇마늘의 독성 때문에 손은 아렸지만(며칠 지나면 손꺼풀이 몇 겹 벗겨질 정도로 독하다.
위생장갑을 끼고 까도 백 개가 넘어가는 마늘을 까고 나면 장갑 사이로 스며든다.)
고기 구워 먹을 때는 물론이고
라면 끓여 먹을 때조차 마늘장아찌와 함께 먹으면 마치 피클처럼 개운해서 좋다는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 배시시 미소 짓게 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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