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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자주 가네...

by 눈부신햇살* 2023. 5. 18.

 

아산에 내려와 살게 된 것이 마치 시골 시댁에 자주 들리기 위한 일이었던 것처럼
요즘 엄청(^^) 자주 가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엔 기력 달려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최상급 녹용을 지어 갖다 드리러 가는 길.
돈은 육남매 통장에서 지불하고 우리는 심부름만 하는 것.
 
 

그새 탑정호 출렁다리는 무료입장이 되었다.
 

무섭다고 저 데크로 된 곳만 골라 걷는 사람들을 더러 보는데 모두 여자들이다.
나도 겁 많기로는 결코 뒤처지지 않지만 절대로 다리 바닥을 보지 않고 먼산만 보고 걸으면 암시랑토 않다.
 

 

가끔 저곳에 전원주택 짓고 내려와 살겠다고 나를 협박하는 저수지 조망이 좋은 신풍리.
협박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나의 지인들과 친구들과 자매들은 모조리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걸......
 

 

 

 

다리를 건너면 바로 있는 커피숖에서 커피를 마신다.
예전에 다리 놓이기 전 매운탕 집이어서 일가친척들이 몰려와 먹곤 했다.
오늘도 그 얘기를 빠뜨릴 수가 있나. 이러쿵저러쿵......
 
오늘은 시댁 오는 길에 계룡산 밑에 있는 막국수 집에서 물막을 먹었다.
면발 사랑이 대단하신, 그중에서도 특히 메밀을 좋아하는 남편 따라
나도 어느새 막국수나 냉면을 좋아하게 되었다.
 

땅이 비옥한가. 선씀바귀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구절초만큼이나 큰 꽃송이를 달고 있다.
 

시골집에 도착해서 훌쩍 커버린 머위대를 자르고 있었더니
시동생 차가 들어서고 혼자 오는 줄 알았는데  동서도 함께 왔다.
오후 내내 머위대 잘라 껍질 벗기느라 손톱밑이 시커메졌다.
동서는 월요일 스승의날에 스승님 모시고 식사 자리가 잡혀 있다고 위생장갑을 끼고 벗겼다.
나는 어느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맨손으로 계속 깠다.
목요일인 오늘까지도 손톱 밑이 시커멓다.
 
나도 안다. 고구마줄기나 머윗대 껍질 벗길 때 먼저 삶아낸 후에 하면 손톱 밑이 멀쩡하다는 것을......
아무튼 머위는 어릴 때는 잎과 줄기를 먹고, 커서는 줄기를 먹으니 참 요긴한 나물이다.
삶는 것은 후환이 두려운 것인지, 미안한 것인지 마당 한편에서 남편이 삶아냈다.
보기 드문 일이다.
 
동서와 내가 이런저런 담소를 늘어놓으며 머위대 껍질을 벗겨내는 동안
어머님은 텃밭의 열무를 뽑아서 다듬으셨다.
눈으로 그것을 보는 순간 걱정부터 올라온다.
저 많은 양의 열무를 내게 김치 담그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
왜 아냐.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잖아.

 


저녁엔 바빠서 절이기만 해 놓고 다음날 오전에 담가서 세 집으로 나눴다.
나는 무얼 척척 해내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 일을 보면 겁부터 난다.
내게 주어지는 일을 거부하지 못하고 어찌어찌 해내긴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내 머릿속에선 강도 8의 지진이 일어난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창고 뒤에 빨간 꽃양귀비가 화려하게 피어 있다.
하얀 샤스타데이지와 보랏빛 등갈퀴나물이 참 조화롭다.
 

그 조금 옆으로는 연보랏빛 지칭개가 저도 여기 있어요, 보아주세요, 하는 것만 같다.
 

김치 담그기가 끝나고 밭에 나갔더니 오늘은 시동생만 와서 저렇게 밭을 갈고
멀칭을 한 다음에 참깨를 심는다고 나더러 끝에 서서 비닐 끝을 바람에 날리지 않게 잡고 있으란다.
`농사철엔 부지깽이도 일을 한다'는 말도 있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도 있고.
 
다음 두둑의 멀칭을 씌우기 전에 잠시 서 있었더니 나더러 그렇게 멀뚱히 서 있지 말고

그 사이에 풀이라도 한 개 더 뽑아내고 돌이라도 골라서 밭 가로 던져 놓으란다. 아이고!
열심히 그리 하고 있었더니 시동생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 어머니가 하라시는데 무슨 말을? 한바탕 웃음이 터지고......

 

예전 같으면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일일이 씨앗을 심었어야 했는데

저런 농기구가 나와서 짧은 시간 내에 수월하게 일을 마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라고 어머니께선 연신 감탄하신다.

 

오전 한 시간여 동안 쪼그리고 앉아 어린 대파 밭의 김을 맨

우리 부부는 그 말에 100% 공감한다.

아무리 엉덩이 의자를 깔고 앉아서 일을 해도 기본적으로 앞으로 수그린 자세라

일어서면 곧바로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
 

일 더 시킬까 봐 얼른 도망간다는 시동생의 농담 섞인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서 돌아오는 길, 
저번에 보았을 때 시골에 와도 한 번도 들리지 않는다던 서운함 가득한 말이 마음에 걸려 잠시 남편 친구 집에 들렀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이곳으로 시집 와 산다던, 이곳을 벗어나 보질 못했다던

친구 아내가 친정집 대밭에서 캐 온 죽순이라며 한 봉지 들려줬다.

갓 캔 죽순은 생전처음 보지만 요즘은 인터넷 뒤지면 요리 레시피 다 나오는지라 볶았더니

재료가 신선해서인지 아삭아삭 맛있어서 한 접시 금방 먹고 두 접시째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해가 서산 너머로 꼴깍 넘어가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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