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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선물

by 눈부신햇살* 2023. 1. 9.

 

며칠 전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택배가 하나 왔다.

된장, 삼치 토막, 식초와 간장이다.

저 간장은 아주 오래 묵은 씨간장을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모두 다 직접 담그고 만진 것들이다.

여자도 아닌 남자가......

 

그 남자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친했냐고? 천만에!

시골의 작은 학교라 45명 정도가 내리 한 반에서 공부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3년을 다니는 동안 그 애와 말 나눈 기억이 없다.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고 또 쥐어짜 보아도 짝꿍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왜 나에게 이런 선물을 보내는 걸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도회지로 나올 때 겨우 3년 함께 공부했던

나를 잊어버리지 않고 내게 연락해오는 고향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그렇게 몇 명의 동창들을 만나본 후 어렴풋이 내게 실망하는 기색이 전해져 오는 그 느낌이 싫어

어떻게 성장했는지 얼굴 한 번 보자고 연락해 오는 친구들을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거기엔 아마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깔리게 된 열등의식도 다분히 작용했으리라......

 

하필이면 그즈음 이 친구가 연락을 해왔고 나는 이제 더 이상은

고향친구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매몰차게 말했다.

그 기억은 이상하게도 내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마음의 짐이 되었다.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그때 미안했었노라고 말해야지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5년 여 만에 작년 여름 고향에서 가진 동창회(

서울에서는 이미 동창회를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고향에서는 처음이었고,

따라서 지방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 몇 명은 처음 보게 되었다)에서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이제는 중년이 된 그 친구를 보게 되었고,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터라 반갑게 대했던가 며칠 지나 내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리하여 나는 홀가분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여차저차하여 그때 그랬었노라고......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노라고......

 

그때도 그 친구는 내게 주려고 간장 한 병을 들고 왔다가

내가 슬쩍 먼저 오는 바람에 다른 친구에게 줬다고 했다.

 

지난 12월에는 서울에서 동창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가지 않았다.

며칠 후 그중 자주 연락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나를 주려고 가져왔던 물건들을 내게 전해달라며 그 친구에게 주었단다.

원래도 동창 모임을 하면 이런저런 선물들을 가져와서 잘 나눠주는 친구이긴 하지만

몇 년 전 어느 날엔 내가 일하는 곳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며

잠깐 얼굴 보자고 해서 나갔더니 표고버섯이니 프라이팬이니 선물을 한아름 안겨 주고 갔다.

 

이 친구 역시 여자가 아닌 남자여서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려고 해 해명하느라고 혼났다.

- 내가 첫사랑이래요. 나는 기억에도 없는데 그 친구가 힘들 때 보낸 편지의 내 답장이

  그 친구에게 큰 힘을 주었대요 등등......

하지만 내게는 늘 약간의 부담스러움이 자리 잡게 된다.

그러지마라, 제발~

그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어떤 식으로 보답을 해야 될지 머리 아파진다.

 

간장 보낸 친구야 주소를 알게 되었으니 택배로 보내면 되지만

프라이팬 줬던 친구는 주소도 모르고 동창회에서나 마주치게 될 텐데

어떤 선물을 어떤 식으로 줘야 할지 모르겠다.

 

 

 

호수를 돌다 건물을 타고 오르는 산타를 발견.

 

 

 

이건 지난번 모임에서 받았던 무정제 설탕 넣어서 만들었다는 매실청 한 병과 

일하는 틈틈이 직접 떴다는 수세미.

 

 

이건 전에 내가 친구들에게 한 권씩 선물했던 책.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를 펜화로 그린 그림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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