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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시골 체험

by 눈부신햇살* 2022. 9. 25.

 

남편 육남매 단톡방에서 시간 되시는 분 고구마 캐러 오라는 시동생의 호출이 있어서 시골 시댁에 갔다.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사그라들지 모르는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이 덩굴 식물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고구마 줄기 껍질을 함께 까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던 끝에 어머님께 여쭤본다

- 저 꽃 이름은 뭐예요?

- 제비콩이라더라. 니 막내 시외삼촌이  씨를 구해다 줘서 심었어. 어디서 보니까 꽃이 퍽 이쁘더라고 심어보라고 해서.

 

와, 콩꼬투리 색깔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색깔로 참 예쁘다.

 

주렁주렁 열렸다.

 

약도라지 밭에는 보랏빛 도라지꽃이 예쁘게 피었다.

 

지난 추석에 이 나무가 베어진 걸 보고 서운함이 어찌나 크던지......

오래전 옆집 아저씨가 뒷내에서 캐다가 심은 왕버들나무인데 봄이면

꽃씨가 멀리까지 엄청 날려 피해를 준다고 동네 주민들의 의견으로 베어냈다고 한다.

 

내 기억 속의 저 나무는 아버님과 연관되어 있어서 서운함이 크고 괜스레 속도 상했다.

생전의 아버님이 저 나무 그늘에서 자주 휴식을 취했더랬는데

이제 아버님 뵙듯 저 나무를 보아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없어져 버리다니......

 

어린 날에 보았던 고구마 캘 때의 광경을 떠올리며 고구마 밭에 들어 생전 처음 고구마를 캤다.

땅이 어찌나 딱딱하게 굳었는지 쇠스랑으로 찍기도 힘들다.

땅이 쇠스랑을 튕겨내는 느낌. 당연히 호미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물 조금 뿌리고 땅이 좀 젖어 포슬포슬 해지면 캐려 했더니 그마저도 용이치 않아서

바위 같은 굳은 땅에서 고구마를 캐느라 애를 먹었다.

긴 고구마 밭을 힘들게 헤집었는데 노력한 결과가 달랑 두 상자의 고구마여서 쓴웃음이 나왔다.

다다음주엔 다른 쪽의 고구마를 캐기로 했다.

 

 

오래전 어머니가 묘목을 사다 심었다는 밤나무는 그새 가지가 벌어지며 훌쩍 자란 데다가

올해 어찌나 풍성하게 열매를 맺었는지 수확의 기쁨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좀 더 익게 두어도 될 것을 일꾼 있을 때 할 요량으로 밤나무를 후려쳐서 떨어뜨린 밤송이를 발로 눌러 

밤알을 꺼내는 작업은 기쁘고 재미있으면서도 참 고되고 힘들었다.

좀 더 익은 밤송이들은 입을 쩍 벌리고 있어서 별 수고 없이 밤알을 꺼낼 수 있지만

덜 익은 밤송이에서 밤알을 꺼내려면 힘으로 밤송이를 벌려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시동생이 나더러 체험학습비를 내란다.

작년 9월 초에는 예식장에 들렀다 시댁에 갔더니 깨를 털자고 하셔서

그 복장 그대로 깨 털던 모습을 큰아주버님께서 사진 찍어 인화한 것을 얼마 전에야 받아 보았다.

 

점심은 어머니께서 한 턱 내셨다. 그리하여 기대하지도 않았던 외식을 하였다.

넷이서 차 타고 나가서 갈비에 냉면을 배부르게 먹고 와서 다시 일에 매달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느라 늦은 점심을 먹고 왔더니 어머니의 화단에서는

그사이 오후가 되어야 피어나는 분꽃이 올해도 어김없이  피었다.

 

 

시골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수확물들.

고구마와 고구마 줄기와 약도라지가 사진에는 빠졌다.

 

실한 밤은 맛도 좋아서 금세 몇 알은 뚝딱.

단감은 왜 푸르딩딩한 것들을 따왔는지 모르겠고,

별로 곱지 못한 홍시는 맛만은 기가 막히다.

 

아마도 어젯밤에는 모두 꿀잠을 잤을 것이다.

거의 매주 시골에 내려와 농사일을 거들고 있는 시동생은 매주 꿀잠을 자려나.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일하다 하늘 한 번 쳐다보려면 허리가 잘 펴지지 않는

고된 농사일이라는 것을 체험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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