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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

제주 - 한라산 등반

by 눈부신햇살* 2022. 6. 9.

2022. 6. 3

 

한라산을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를 이용해 백록담에 오르려면

먼저 한 달 전에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운영하는 한라산 탐방 예약시스템 사이트에 접속해서

탐방 예약 신청을 해야 한다. 어리목, 영실, 돈내코 등 백록담으로 이어지지 않는 다른 코스는 무방하다고 한다.

예약이 끝나자 휴대폰으로 예약 완료  문자가 왔다.

 

1일 입산 인원 제한이 관음사 500명, 성판악 1000명이다.

관음사 코스는 짧은 대신에 더 난이도가 있고, 성판악 코스는 난이도가 낮은 대신 거리가 길다고 한다.

우리는 완만한 성판악 코스를 선택했다.

생전 처음 등산용 스틱을 샀고, 햇빛에 대비해 모자와 토시와 장갑을 챙겼다.

 

6시쯤 김밥집에서 아침을 먹는 중에 벌써 성판악 주차장이 만차라며

제주대학교 주차장에 주차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문자가 왔다.

78대 주차할 수 있다고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사람들의 부지런함에 깜짝 놀랐다.

묻고 검색하여 제주대학교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281번 버스를 타고 성판악 주차장에 내렸다.

 

 

7시 20분, 한라산 성판악 코스로 입장할 때 입구에서 문자를 열어 QR코드를 찍고 들어갔다.

 

푸르게 푸르게 우거진 초록 초록한 숲이 우리를 맞이했다.

 

등산로 초입엔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걷기가 좋았는데 내려올 때에 그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힘이 빠져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미끄러운 현무암 돌들을 밟으며 내려오려면

자칫 삐긋하여 발목을 다칠 수도 있어 조심하려면 무척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라갈 때는 평지라 느꼈는데 내려올 때는 경사도가 제법 있는 길이어서

올라갈 때의 그 길이 맞나 하는 의아심까지 들었다.

 

 

등산로 옆에는 온통 조릿대의 세상이다.

내려올 때엔 저 조릿대 속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노루를 발견하기도 했다.

 

오전의 맑은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초록의 숲 사이를 걷자니

왠지 흡족한 마음이 들며

초록숲이 주는  싱그러움과 숲 내음에 빠져 들어

아, 참 좋다! 를 연신 외치며 이런 풍경 속을 걷고 또 걷는다.

 

빽빽한 나무들로 인해 전혀 조망이 트이지 않는 길을 끝없이 걸어간다.

 

 

 

속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4.8km의 신정호 둘레를 매일 걷다시피 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 헬스장에서 근력운동도 하는데 

성판악 코스가 아무리 완만한 산길이라고 해도 평지와는 체력 소모와 시간 차이가 꽤 났다.

그래서 반가웠던 대피소에서 에너지바를 먹으며 잠시 쉬고 화장실도 들렀다가 다시 출발.

 

속밭 대피소에서부터는 은근한 오르막길인데 데크계단으로 된 길도 있고, 현무암 계단 길도 있다.

오를 때는 현무암 계단길이 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내려올 때는 현무암 계단길이 더 편하다고 느껴졌다.

돌과 돌 사이를 통통 튀듯이 건너뛰면서 내려오면 되므로.

어디까지나 힘이 좀 남아 있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 참 좋다! 외치는 횟수가 줄어들고 지쳐갈 때쯤 나타난 진달래밭 대피소.

이제부터 난이도 상의 구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걷고 또 걸었는지 데크 길들의 가운데가 거의 다 파여 있다.

 

 

한라산의 높이는 1,947.3m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성판악코스 출발점이 해발고도 784m라고 하니까 내가 오르는 산 높이에서 그만큼 빼야 되나.

해발 1600m라는 표지석을 보니 반갑다. 이제 정상이 멀지 않았구나!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고사목이 눈에 많이 띈다.

 

초록 숲 속에 진분홍색 큰앵초의 꽃은 눈에 확 띄게 예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붉은병꽃나무도 자주 보이고, 하얀 마가목의 꽃은 정말 많이 피어 있었다.

노란 실거리나무 꽃은 실물 영접은 처음인지라 신기해서 보고 또 보고,

비엔나소시지가 줄줄이 서 있는 듯한 구상나무의 꽃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시야가 트이기 시작하자 시원스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뒤돌아 보면 멀리 사라오름이 보이기 시작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울퉁불퉁한 이 현무암 길은 사람을 참 힘들게 했다.

내려올 때는 힘 빠져서 더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흙길은 거의 없는 듯......

 

멀리 한라산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하자 어찌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내뱉는 한마디. 보인다, 보여!

 

옆을 둘러보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점점 산이 가까워지고,

사진엔 잘 안 나타나지만 산 왼쪽으로 갈 지 자 모양의 길로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뒤를 돌아보면 멀리 이름도 예쁜 사라오름이 보인다.

 

산 아래 제주시가 희뿌옇게 보이고,

기온이 낮은 한라산 위쪽엔 아직 산철쭉이 피어 있다.

많이 보이는 비닐하우스는 귤 하우스라고 한다.

 

발아래로 구상나무 고사목 군락지가 희끗희끗 보이고,

마지막 20여 분 있는 힘을 다해 난이도 상의 계단길을 올랐더니 

 

이런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백록담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긴 줄이다.

순간 망설였다. 이 긴 줄을 버텨야 하나? 버티자!

우리가 언제 또 이 높은 산에 올라올 일 있으려고!

그리하여 장장 1시간 여를 기다렸다가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그러고 나서 한 과정을 마쳤다는 성취감에 느긋하게 둘러보는 백록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것이 몇 가지 있던데,

이렇게 화창한 날에 선명하게 백록담을 볼 수 있다니 3대가 덕을 많이 쌓았나 보다,라는 농담도 한다.

물이 가득하면 더 멋진 백록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가물어서 하트 모양의 백록담에 물이 적다.

 

 

티브이에서도 보고 사진으로도 간혹 보던 백록담이지만

내 발로 걸어와서 직접 내 눈으로 본다는 사실이 벅차게 감격스러웠다.

게다가 이렇게 선명한 백록담을 볼 수 있는 날이 일 년 중에 며칠밖에 없다잖은가.

그래서 자꾸만 백록담을 보고 또 보게 되었다.

눈에, 마음에 꼭꼭 새기듯이.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오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또 다르니까.

 

 

 

백록담 근처엔 까마귀가 참 많았다.

 

동물이 웅크리고 앉아 하늘을 쳐다보는 듯한 특이한 형상의 바위.

 

이런 풍경 내려다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등에 받으며 점심을 먹었다.

따뜻하게 달궈진 데크 층계에 앉아 먹으니 내가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흡족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30분가량 쉬다가 이제 슬슬 내려가 볼까.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 경사도가 더 있어 보인다.

 

산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독초 천남성이 내려올 때는 자주 눈에 띄었다.

 

보통 등산에 소요되는 예상 시간이 올라갈 때 4시간 30분, 내려올 때 4시간 걸린다는데

더도 아닌 덜도 아닌 딱 8시간 30분이 걸린 등산이었다.

사진 찍기 위해 기다린 1시간과 점심 겸 휴식 30분을 더하면 산에서 10시간을 머무른 셈이다.

 

산에 오르기 전 허리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남편 보다도 어느 정도 내 체력에 자부심이 있었던

내가 오히려 더 겔겔(?) 거렸다는 것이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하산 어느 지점부터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거의 절뚝거리면서 아주 더디게 산을 내려와야 했다.

그러면서 제주도에서 내일 정형외과에 가봐야 되나 생각을 할 정도였다.

준비해 간 스틱이 얼마나 유용했는지 모른다.

 

숙소에도 절뚝거리며 들어가는 나를 젊은이들이 안쓰럽게 쳐다볼 정도였는데

신기하게도 다음날 아침엔 말짱했다. 하지만 장딴지와 허벅지의 근육통이 어찌나 심한지 5일을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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