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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

고향 바닷가에서 1

by 눈부신햇살* 2022. 5. 16.

고향에 내려가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게시물을 뒤져보니 2013년에 다녀왔으니 그로부터 한참 되었다.

 

고향에는 잘 알지 못하는 먼 일가친척들은 있지만

가까운 친척들은 아무도 없는지라 9년 전에 가서는 왠지 모르게 쓸쓸함과 허무함이 올라오는 가운데

우리 동네 뒷바다도 아닌 다른 동네의 해수욕장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초등학교 시절 우리의 소풍지이기도 했던 바닷가를 조금 거닐다가 돌아왔었다.

그 쓸쓸했던 마음을 정지용의 <고향>이란 시로 달래기도 했었다.

 

고향

                                    정 지 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그때의 쓸쓸함이 컸던지 이따금 남편이 남도 쪽을 여행하다가

고향에 들르지 않겠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젓곤 했었다.

나중에 그런 얘기를 들은 고향 근처에 사는 남자 동창이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지만

어쩐지 고향에는 들르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들이 45년여 만에 동창회를 고향 바닷가에서 한단다.

그것도 다른 동네 바닷가가 아닌 내가 살던 쪽의 동네 뒤 바닷가에서.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길.

 

김제를 지날 때면 늘 너른 평야에 감탄하곤 한다.

아산은 둔포 쪽 빼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달리고 달려 고향에 가까워지면 눈에 띄기 시작하는 붉은 황톳빛의 밭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이라는 시구가 늘 떠오르는 한눈에 확 들어오는 강렬한 땅의 색깔.

어린 날 소꿉놀이할 때 고춧가루로 쓰던 황토흙.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구릉지대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보다 밭이 많다.

그 옛날 간간이 보이던 자그마한 솔숲들은 모두 개간하여 밭으로 변해 버려

어릴 적 추억 속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는 고향이 되어 버렸다.

 

내 살던 동네 뒤 바닷가에 새로 들어선 낙지 조형물.

세발낙지가 유명한 곳이라서 동창회에 가서 가장 낙지를 많이 먹는 것 같다.

서울에서 동창회 할 때도 직접 낙지를 공수해 오기도 하고,

내가 자신의 첫사랑이라던 한 친구는 어느 해 고향집에서 올라온

낙지의 일부를 내게 갖다 주러 일부러 우리 동네에 오기도 했었고,

또 요번에도 정말 낙지가 원 없이 푸짐하게 상에 올라왔다.

 

볼 때마다 놀라는 낙지 먹는 방식.

나는 탕탕이처럼 낙지를 잘게 잘라 참기름과 깨에 버무린 것을 먹는데 반해

친구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꿈틀거리는 낙지 한 마리를 나무젓가락이나 손가락에 머리까지 칭칭 감아서 한 입에 먹는다.

물론 내게도 그리 먹으라고 권하지만 나는 서울 가시나처럼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곤 한다.

느그, 많이 묵그라아~

 

그리웠던 내 고향 바닷가.

하지만 아기 때 3년, 뭘 조금 알 무렵 초등 고학년 3년, 도합 6년 산 동네.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은 고작 3년의 추억이 있는 바닷가.

그 짧은 기간에 본 바다지만 가장 정겹고 그립고 아름다웠던 바닷가.

 

이 바다의 갯벌에서는 갯지렁이도 많이 잡았었다.

바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뻘에 발이 푹푹 빠지며 잡아야 해서 주로 젊은 청춘 남녀가 잡고

(낚시 미끼로 일본에 주로 수출했다고 한다),

우리는 백사장 가까운 쪽에서 작은 설렁게나 고둥을 많이 잡았었다.

그런 일들은 왜 추운 한겨울에나 해야 되는 일이었는지 매서운 바다의 칼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곱은 손으로 고둥을 잡던 기억이 떠오른다.

허리 구부리고 계속 줍다가 나중에 아이고, 허리야, 하면 할머니와 동네 어른들은 배를 잡았다.

쪼끄만 것이 허리가 어딨다고 그러냐고 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했다.

 

수평선이 보이는 탁 트인 바다가 아니라 다른 쪽 육지가 보이는 호수 같은 바다다.

날이 화창할 때면 건너편이 더욱더 잘 보인다.

학교 작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는 안데르센의 동화 <백조 왕자>에서 백조가 된 왕자들이

동생 공주를 구출해 바구니에 태워 날아가던 장면을 떠올리며

내게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꿈꾸기도 했었다.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바다 앞에 서면 어제 일인 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다.

 

송림에서 캠핑하는 사람들도 많고,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서 놀랍다.

고향 바다가 관광지가 되었구나.

 

보고 또 보고,

 

예전에 없던 새로 생긴 방조제의 야자 매트 길을 걸어 모임 장소로 간다.

 

저기 어디쯤 코딱지만 한 무인도도 있었던 것 같은데......

 

무더운 여름날엔 <여름 성경학교>에서 이 바다로 나와 물놀이를 하기도 했었다.

비록 땅 짚고 헤엄치기였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물속에 몸을 담그고 둥둥 떠다니는 기분은 아주 그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때 함께 했던 친구와 옛 추억을 회상해본다.

 

 

 

 

삭힌 홍어는 처음엔 코를 너무 쏴서 눈을 뜰 수 없더니 나중에는 묘하게 자꾸 끌렸다.

 

보고 또 보고,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바다.

 

관광지가 되면서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송림. 

추억 속의 소나무 숲이 훨씬 좋았는데......

 

12시에 만난 우리들은 일단 배를 불리고 물이 빠진 바닷가에서 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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