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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호의 사계(四季)

노을이 번질 때

by 눈부신햇살* 2022. 2. 27.

 

 

서쪽 하늘에 주홍빛으로 노을이 번질 때

노을빛만큼이나 명랑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호수를 돈다.

 

때론 짙게 깔리는 저녁 안개만큼이나 마음이 명료하지 않은 순간도 있지만

이렇게 맑은 날 저녁이 시작될 무렵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자면

모든 잡생각들이 일순간에 멀리 사라져 버리고

붉은 노을과 노을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에만 집중하게 된다.

 

어느덧 해빙기가 되어 연꽃이 있는 연못의 얼음도 녹고

그 연못에서 오리들은 신이 났다.

 

바람은 아직 차도 찬바람 속에 봄이 와 숨어있다고 생각하며

괜스레 코를 킁킁거리기도 하며 총총히 걷는다.

 

 

 

 

 

저녁 스며드네

 

                                                   허수경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물방울은 동그르 꽃 밑

에 꽃 연한 살 밑에 먼 곳에서 벗들은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

고 저녁 스며드네.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막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

이는 듯했는데.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

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

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

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올리네.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빛 아래 그렇게 그렇게

스며드는 저녁, 저녁 스며드네.


 

 

 

 

 

 

 

 

인기 있는 관광지인 신정호는 공원부지를 약 5만㎡쯤 더 넓힌다고 한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던 한적해서 느긋한 마음을 갖게 하던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지만

그 분위기를 즐기고 싶으면 평일 오전 맑은 햇살이 눈부실 때 오면 가장 멋진 신정호를 만날 수 있다.

눈부신 햇살 아래 잔물결이 반짝반짝 맑게 빛나는 호수를.

때론 거울 같이 잔잔한 수면 위로 산과 집들이 비치는 모습을.

 

맨 윗 사진에 보이는 풍경을 보기 전에 건너던 초산목교는 노후화되어서

새로운 구름다리로 교체한다고 한다.

이래저래 신정호의 풍경이 바뀔 예정이다.

 

남편 말에 의하면 내가 아산에 내려오는 데에 망설임을 줄여준 것 중의

하나가 자연친화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신정호라는데

십여 년 전 남편이 맨 처음 내려왔을 때와는 천지 차이로 변했다는

신정호 둘레 풍경은 내가 내려와 있는 지금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

 

너무 빨리 변해가는 풍경 속에서 사진으로나마 이따금 옛 추억을 되새길 때가 있어

사진 속의 풍경 속으로 더 빠져들 때가 있는 것 같다.

 

 

 

같이 있는 행복

 

                                   베르나르 베르베르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행복을 얻는 방법 중에서

으뜸가는 것에 속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로 바라보아도 되고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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