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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인상

by 눈부신햇살* 2014. 12. 14.

 

 

 

 

"저는 자전거 안타는데요."

"왜 요즘은 늦게 오셔?"

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이었다. 대답할 때까지만 해도 그 분이 다른 사람과 나를 헷갈려하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뒤늦게 되짚어 생각해보니 내가 맞는 것 같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그동안은 바쁘게 사느라 오전 8시까지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 시작해서 9시 30분쯤이면 그곳을 나서곤 했다.

일주일에 두서너 번 한 2년여를 그렇게 했으니까 그 분을 드문드문 보긴 했지만 어쨌든 낯익은 얼굴이다.

헬스클럽이란 곳이 따로따로 개별적으로 운동하는 곳이라 친화력이 좋은 한 분을 빼고 인사하고 지내는 사람이 없다.

그곳에서 사람을 사귀려면 에어로빅을 하든가, 요가를 하든가, 스피닝을 해야할 것이다.

 

12월로 접어들며 한가해졌다. 겨울 아침이라 아직도 어두컴컴한 7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감사하며

8시에 일어난다. 다행히 대학생 아들녀석도 수업이 늦게 시작되는 날이 더 많다.

9시쯤에 운동하러 가서 10시 반쯤에 그곳을 나서면 하루를 시작하기에 딱인데 아쉽게도 그 시간에 가면

그곳이 여자들로 바글바글하다. 탈의실도 바글바글, 샤워실도 바글바글.

9시 20분에 에어로빅이 시작되고, 이어 요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함께한 운동으로 친해진 사람들 틈에서 멀뚱멀뚱 기다렸다가 샤워실로 들어가기가 쑥스러웠다.

그들도 순서를 기다리느라 몇몇이 수다 떨며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을 봤다. 난감함을 피하려 

붐비는 시간을 피해서 간다는 것이 11시까지 가서 12시 반쯤에 끝내고 나오는 것이였다.

 

막 운동을 끝내고 씻은 다음 머리를 말리려고 하는 때에 그 분이 들어오시며 인사를 건넸다.

"아직도 안 가셨어?"

다른 몇몇 여자들에게 인사를 하셨다. 더러 운동이 끝난 후에 한참씩 탈의실 평상에 앉아서 수다를 늘어지게 떠는

사람들이 있었다. 계속 가다보니 그런 사람들도 정해져 있더라만.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내게도 그렇게 인사하셨다.

순간 당황했다.

"어...... 아......예."

못 드셨어도 일흔다섯은 되어 보이는데 인사를 받으니 계면쩍기도 하고 과연 저 분이 나를 알고 인사를 하시는 걸까,

라는 의문도 들고.

그 분은 금방 들어와서 어찌어찌하시더니 또 금방 나가셨다. 왜 운동을 안하고 가시는지, 그럼 뭐하러 오셨는지,

운동은 아침 일찍 하시고 두 번째 오시는 건지, 지금 탈의실에 들어오셔서 무엇을 하고 금방 다시 나가시는 건지

궁금함 투성이였다. 그런데 나가시면서 그사이 혼자 남은 내게 또 작별인사를 건네셨다.

"하고 가셔."

 

그 다다음날인가, 똑같은 시간에 또 얼굴을 뵈었다.

그날은 나보다 연장자신데 내가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게 웃으셨다.

샤워실로 들어갔더니 나이 좀 들어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서 얘기를 주고받으며 씻고 있었다.

얘기 없이 씻어서였는지 내가 더 빠르네, 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먼저 탈의실로 나왔다.

평상에 앉아서 무얼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는 그 분이 내게 말했다.

"어우, 빠르시네. 근데 아침에 일찍 와서 자전거 타더니 왜 요즘은 늦게 오셔?"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 바로

"저 자전거 안타는데요."

였다. 아닌게아니라 지난 2년여 동안 한번도, 단한번도 자전거를 타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누구와 착각하시는 줄 알았다.

놀란 얼굴이 되시더니

"그래? 그 아침에 자전거 타는 얌전하게 생긴 사람하고 참 많이 닮았다."

"그래요? 그렇게 닮았어요?"

"응.  얌전하게 운동하다 가던데......"

내가 머리를 대충 말리고 돌아서보니 가고 안 계셨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침 일찍 운동을 가면 런닝머신 위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걸 자주 봤다.

아니면 내가 런닝머신 위에서 걷고 있을 때 뒤늦게 오셔서 내가 걷기를 끝내고 런닝머신 뒤에서 기구

운동을 하고 있을 때 그 분은 런닝머신 위에서 걷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뒤에서 기구운동하는 걸 자전거를 타고 있다고 착각한

것 아닐까? 그 시간에 운동하러 오는 사람은 고작해야 서너 명이였고 그중에 나처럼 짧은 컷트머리를 한 사람은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맞지 싶다. 그러다 드는 생각.

'아직도 내가 얌전해 보이는가?'

아, 얌전해 보이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무지하게 노력하는데 말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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