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풀꽃나라 카페>
호수공원으로 가을나들이를 갔다. 내 차로 내가 운전하고 가자고해서 선뜻 내키진 않았지만 언제까지나 내켜하지 않을 순 없어서 집에 혼자 남은 작은녀석에게 주방쪽 창문으로 차열쇠를 떨어뜨려 달라고 했다.
뒷좌석에 큰녀석을 태우고 조수석엔 남편을 태우고 집을 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 남편이 그런다. 잘 하는구만, 왜 자꾸 겁을 낼까.
사실, 처음엔 조수석에 앉은 남편의 잔소리가 염려스러웠는데 남편을 태우고 보니 남편을 믿거라 하는 마음도 없잖아 생겨났다.
번화한 곳은 처음 나가는 거였는데 운전은 번화한 곳이나 좀 덜 번화한 곳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동안 내 운전하는 솜씨가 터프해졌단다. 속도 내는 것은 물론이고, 무대포 기질이 생겼다나. 그것은 옆자리의 남편 때문이였고, 나 혼자일 땐 지금도 조심조심 운전한다.
기타학원 밑에 큰녀석을 내려주고 수강료를 몇 개월 미리 내놓아 작은녀석 대신 남편이 다니던 영어학원에 들렀다가 호수공원으로 갔다.
입구의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아 돌아서는데 작은 여자 아이 하나가 칭얼거리며 서 있고, 할머니 한 분이 만 원짜리를 팔랑거리며 바꿀 돈이 있냐고 물으셨다. 바꿔드릴 돈은 없어서 제가 동전을 드릴게요, 했더니 아니란다 바꿔달란다. 이상해서 자판기를 슬쩍 보니 동전 몇 개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아, 알겠다는 시늉으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서 드리려는데 손사래를 치면서 받지 않으신다. 아이는 칭얼거리고 그깟 돈 천 원 큰 금액도 아니고 할머니께서 받지 않으시니까 아이 손에 쥐어주고 남편과 나는 근처 벤치에 가서 앉아 단풍 든 숲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남편이 한 나무를 가리키며 저게 떡갈나무 아니냐, 저건 잎이 늦게 떨어진다, 고 해서 내 보기엔 목련나무 같아서 목련나무 아냐? 물어보다가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떡갈나무가 맞았다. 멀리서 떡갈나무를 알아맞추는 남편의 눈썰미에 오! 하고 감탄하며 돌아오는데 아까 그 할머니가 천 원짜리를 팔랑거리며 뛰어 오셨다. 찾아보니 동전이 있어서 음료수를 뽑아줬단다. 아니 굳이 되돌려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하면서 돈을 받으니까 그지 없이 환한 미소로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해요."
말씀하시며 가셨다. 그 작은 돈 천 원을 그냥 아이에게 줬다고 남편이 내게 나같이 착한 사람 드물다고 칭찬한 후였다. 남편이 한마디 덧붙였다.
"돈 천 원도 도로 돌아오고 칭찬은 칭찬대로 받았네."
단풍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러 낙엽이 수북이 깔린 길을 더러는 팔짱을 끼다가 더러는 손을 잡다가 하며 한바퀴 돌았다. 다른 때보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친구들 얘기, 아이들 얘기, 세월의 덧없음에 대한 얘기, 인천에 살 때는 인천대공원이 있어서 좋더니 일산은 호수공원이 있어서 좋다는 얘기, 지난번 남편과 술자리에서의 남편의 취중진담에 관한 얘기......
11월로 접어들었는데도 가지고 간 가디건이 무색할 정도로 더웠다. 가디건은 입지도 못하고 티셔츠 바람으로 다니는 데도 연신 덥다는 말이 나왔다. 더러 반소매 차림의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작은 자작나무 숲도 말할 수 없이 이쁘고, 메타쉐콰이어 길도 이뻤다. 단풍은 단풍대로 곱디 고왔다. 느티나무가 나란히 심겨진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고 돌아오는 길. 주차장에서 출구라는 표시만 보고 아무 생각없이 곧바로 우회전하다가 차 옆구리 갈았다. 그때까지 좋았던 우리 남편, 단번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목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서 내게 생각이 있니 없니 난리가 났다. 나는 죄인인지라 알았어, 옆에 화단이 있다는 걸 생각 못했어, 했더니 이젠 그럴 단계도 지났구만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없을 수가 있냐 없냐 난리 난리였다. 알았어, 그만해, 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내 무릎에 손을 살그머니 올려 놓는다. 한풀 꺾이니 슬그머니 미안했던가보지.
나는 기가 죽을 대로 죽어서 남편이 코치하는 대로 차를 끌고 왔다. 차선까지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길래, 싫어, 난 이 길로 갈거야, 뻗대기도 하면서.
저녁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가 우리 아파트로 들어서는데 두 개의 입구 중에 왼쪽이 우선인데 그걸 무시하고 내가 먼저 가려다가 또 하마터면 받힐 뻔 했다. 그걸 보고 어디 가만 있을 우리 남편인가. 또, 또, 운전 이렇게 한다고 난리 난리였다. 나는 나대로 빨리 가지 안 간다고 할까봐 그런 거였다.
주차장에서는 또 다른 날과 달리 살짝 얼이 빠진 상태라 각도 계산을 잘못해서 한번에 후진 주차를 하지 못했다. 남편이 어디 그냥 넘어갈 성격인가. 자기가 옆에 앉으면 더 운전을 못하는 것 같다고 도중에 내려 버렸다. 나는 보란듯이 잘 주차하고 한숨을 크게 한번 푹 쉬고 같이 집으로 올라왔다.
나는 집에 와서 니 아빠가 글쎄 그러더라, 하며 작은녀석에게 이르고 났더니 조금 기분이 풀려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보는 남편 무릎에 내 두 무릎을 올리고 옆에 앉아 목을 껴안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난 참 밸도 없다. 그래도 나 데리고 운전 연습 시켜주고 호수공원 같이 놀러가는 남편이 어여쁘니 말이다. 얄미운 마음은 금세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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