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오던 해 봄,
요렇게 예뻤던 산책로가 자연생태보도육교를 만든다나 어쩐다나 해서
다 까뭉개지고 나무들이 뽑힌 자리는 흉칙한 상처처럼 누르스름한 흙들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옆의 대로는 대로대로 지하차도를 만든다고 뒤집어 엎어 놓았다.
한마디로 요즘 풍경이 정신사납다.
그래도 요곳만 지나면 제법 나무들이 우거진 길이 마음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며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는 것 같아 자주 위안을 받는다.
아, 초록은 얼마나 싱그럽고 풋풋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색이란 말인가, 함시롱.
연일 맑디 맑은 가을하늘이 푸르게 푸르게 펼쳐지고 있다.
지난 개천절날, 남편이 아직도 운전이 미숙한 나를 엄청 위하는 척 하면서
"그래도 자유로를 한번 타야하지 않겠어?"
하며 어르고 달랬다. 나는 큰 숨을 몇 번 들이쉰 다음 내 코딱지만한 차 조수석에 남편을 앉히고
집을 나섰다. 간이 콩알만한기로 소문난 나는 운전석에 앉아 모르는 길을 갈 때
< 우리가 걱정하는 고민의 4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에 관한 것이다 >
를 증명이라도 하듯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이 지레 겁을 먹고 싫어했다.
비록 짧은 거리지만 1년 정도 출퇴근을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생각보다는 덜 떨렸다.
마침 일산장이 서는 날이라 사람과 차로 붐비는 곳을 빠져 나와 대로변을 달리는데
생각보다 차가 많지 않았다. 그러면, 이렇게 도로가 한산하면 운전하기 쉽지.
차로 바꾸기가 늘 어려운 나는 속도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쌩쌩 자유로를 향해 달려갔다.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것은 꼭 놀이기구를 타는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갈 때도 마치 청룡열차의 약하게 굽이치는 부분을
지나가는 듯한 느낌. 그러나 달리면서 또 생각한다.
이렇게 한 길로 달리는 거야 뭐가 어려워. 차선 바꾸기가 힘들지......
휴일에 서울 근교의 산은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더니
그 조그마한 심학산 밑도 차로 넘쳐나고, 숲속 오솔길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남편은 내가 맨처음 심학산에 가자고 할 때는 그 코딱지만한 산 뭐 볼 거 있다고,
차라리 북한산엘 가겠다,라고 콧방귀를 뀌던 양반이 약 1시간 30여분 코스의 둘레길을 걸어본 후론
나보다 더 심학산을 좋아하게 됐다.
쉬엄쉬엄 터벅터벅 걷다 바라 본 한강,
한강을 가운데 두고 넓게 펼쳐진 황금들녘,
푸르디 푸르게 드높은 가을하늘,
눈 돌리면 어디고 우뚝우뚝 온 나라를 뒤덮을 듯한 아파트, 아파트들......
한참 걷다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파란 나뭇잎 사이로 조각조각 보이는 그림 같은 하늘.
앞서 걷는 남편의 군인처럼 짧게 깎은 머리와 검정색 일색의 등산복과 뒷태.
지난 번과 다르게 약천사 쪽에서 올라갔던 우리는 내려오는 길에 약수도 한 잔 마실겸
절구경을 했다. 불상이 참 크다, 고 생각하는 나와 왜 불상은 꼭 가분수여야 하냐는 남편.
그러고보니 정말 부처님상은 항상 얼큰이시구나!
옆에서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본 남편은 이런 정도면 부산도 갈 수 있겠어, 했지만
간이 녹두만한 내가 콩 중에서 가장 큰 콩인 작두콩만해지기 전에는 어림도 없지,하는 생각.
그나저나 다시 살과의 전쟁이다.
53키로에서 54키로를 왔다갔다 하더니
56키로에서 57키로를 왔다갔다 한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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