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가서 9시부터 6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오는 작은녀석이
어제 오후엔 점심 먹고 가서 가방을 가지고 그냥 돌아왔다.
헌책방에 간단다. 그새 용돈이 꽤 쌓여서 그러는 줄 알았다. 말 안해도 현금영수증까지
알아서 챙겨온 녀석이 내게 청구하는 돈은 7만 원이였다.
퇴근해 집에 돌아와 작은아이 방을 들여다보니 7만 원어치의 헌책은 꽤 분량이 많았다.
- 이걸 다 어떻게 들고 왔어?
빈 가방을 매고 가긴 했지만 가방보다 넘쳐났을 텐데......
- 이제부터 제가 그 스토리를 다 얘기할려고요.
맨처음엔 책을 다 골라놓고 보니까 제가 지갑을 가져가지 않은 거예요.
다시 집에 와서 지갑을 가져 갔어요. 그때까진 비가 얼마 오지 않았어요.
책을 들고 책방을 나서니까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버스 정류장 밑에서 잠깐 비를 피했죠. 비가 좀 덜 오길래 다시 오는데
날은 덥고 책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워서 나중엔 화가 막 나더라고요.
어떻게 어떻게 집에까지 와서 오자마자 도대체 몇 키로나 나가나
저울에다 달았어요. 10키로예요.
말 들어보니까 군대 가서 훈련나가 행진할 때 지는 짐이 30키로래요.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대단하다. 책이 얼마나 무거운데......
이어 아들에게로 마구 쏟아지는 흐뭇한 눈빛.
책 목록을 훑어보니 자기개발서와 최근 책과 고전도 꽤 있다.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남자애들은 이런 책 안 읽는 줄 알았다. 하긴 녀석은 '빨강 머리 앤'도
읽었고, 키다리 아저씨도 읽었다.),독일인의 사랑, 주홍 글씨, 빠삐용......
보기만 해도 어지럽고 정신 사나운 <맨큐의 경제학>은 일찌감치 남편이 빌려서 배 깔고 엎드려 읽고 있었고,
나는 그 중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폭풍의 언덕(오래전 학창시절 때 읽은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김남일 산문집,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유명 작가들의 산문집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티에리코엔의 <살았더라면>, 이병률 산문집 <끌림>을 빌렸다.
내 독서 취향은 참 편협하다. 녀석이 사오는 자기개발서나 전문서적 같은 것은 잘 안 빌린다.
마지막으로 큰녀석이 작은녀석의 방에서 몇 권 빌려나오면서 그런다.
- 니가 책을 좋아해서 참 좋단말야. 난 돈 내고 안 사도 되잖아.
나, 반색을 하며
- 그래? 책은 자기 돈으로 사야하는 거야?
큰녀석, 싱글싱글 웃으며
- 네. 그래야 자기 것이란 애착이 생기죠.
작은녀석, 난처한 낯빛으로
- 난, 안그러는데.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지만 누가 사주면 더 좋은데......
작은녀석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모조리 들여 놓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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