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란 말은 작은녀석 때문에 알게 된 말이다.
유난히 새로운 기계를 좋아하는 자신을 변명하면서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알려줬다.
집안내력인가? 집안 쪽으로는 별 하나 다는 꿈을 미처 이루지 못하고
대령으로 만족하며 작년말 정년 퇴직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조만간 새로운 일터를 갖는 것이 꿈인 큰아주버님이 있다.
큰아주버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맨처음 노트북이 나왔을 때 고가(모든 기계가
처음으로 나올 적엔 상당히 고가이다)의 노트북을 들고 다녀서 시선을 끌더니
스마트폰도 나오자마자 사들고 오셔서 자랑을 늘어 놓으셨다.
옛날 옛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시골 마을에서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타고 동네 방죽 위를
누볐으며, 명절 때면 요란스럽게 색소폰 소리로 동네에 존재를 알리는 유명 인사이기도 하다.
아, 저 집의 큰아들이 시골집에 내려왔구나, 하고.
그 뒤를 이어서(?) 우리 작은녀석이 집안 쪽에서 두 번째로 스마트폰을 가진 이력을 가지게 됐다.
지금 내가 애용하는 mp3도 원래는 작은녀석 것이었다.
자칭 얼리 어답터이니 살 때는 꽤 주고 샀다. 다시 새로운 품질로 현혹하는 아이팟에 매료된
우리 아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밥 먹을 때나 그냥 있을 때나 몇 날 몇 일을 아이팟 얘기만 했다.
그냥 아이팟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큰아주버님처럼 경제적 능력이 있어서 맘에 들면
확 사고 보는 입장도 아니니 이리저리 궁리에 궁리를 한 결과,
그 동안 자신이 모은 돈과 시험 때 반에서 일등하면 상금으로 얼마를 보태주며
또 한두 달 용돈을 가불하며, 지금 가지고 있는 mp3를 인터넷에 내놓아서 팔겠다고 했다.
산 지 불과 일년 갓 지난 것을, 물건도 곱게 쓰는 성격이라 아직도 새 것 같은 것을
반절 값도 안 되게 판다고하니 너무 아까웠다. 그래, 조금 더 깎아서 내가 샀다.
그 전엔 휴대폰에 마이크로sd카드를 추가로 넣고 노래를 80곡 가량 넣어서 듣곤 했다.
살 때는 내겐 굳이 mp3 같은 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며 많이 망설였는데
나중엔 내가 사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일단 노래가 엄청 많이 들어가고
음질이 다르고 수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주방에서 주방 라디오로 음악 들으며 조리할 때나 설거지할 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소음 때문에
정확히 못 듣는 경우가 많은데 앞치마 주머니에 쏙 넣고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면 잘 들을 수 있어서 좋고
아들녀석들이나 남편이 거실 소파에서 텔레비전 볼 때도 나는 음악 들을 수 있으니 참 좋다.
그뿐인가, 빨래 할 때도 주머니에 넣고 듣고, 빨래 널 때도 물론이고
운동할 때는 더더욱이다.
그런데 아들이 쓰다 넘긴 mp3라서 아들 취향의 노래들이 많이 남아 있다.
듣는 순간 풋 웃음이 나왔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대여섯곡, 루시드 폴의 노래 두어곡,
요즘 유행하는 팝송들과 더더밴드와 크라잉 넛과 김동률의 노래는 아예 다 넣었나보다.
영 아닌 건 더러 삭제했지만 아들 덕분에 음, 좋은 노래군! 하며 듣는 것도 꽤 된다.
그 아들이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원하던 국제고등학교는 2차 면접시험에서 떨어져 일반고등학교로 배정 받았다.
떨어져서 아들과 남편은 많이 낙담했지만 나도 많이 낙담했지만 한편으론 조금 안심하기도 했다.
다른 특목고보단 공립이라 돈이 적게 든다고는 하지만 해외연수도 끼어 있고해서 돈이 일반고보다 훨씬
많이 들기 때문이다.
졸업식 땐 전교조회장상을 받으며 집안을 빛냈다.(푸하하하.......집안 네식구 중에 중학교 졸업할 때 상 받은
사람이 없어서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나에게 자잘한 지식을 그 또래의 세계를 잘 알려주고 있는 얼리 어답터가 조금 신기해 보이고
우습기도 하고 그렇다.
아, 큰녀석은 이번에 생일선물로 클래식기타 사줬다.
녀석이 용돈 8만 원 보태고 내가 15만 원 투자했다.
녀석의 방엔 기타 정리대에 네 개의 기타가 나란히 걸려 있다.
아, 또 있다.
방학 한 달 동안 보컬레슨도 받게 해줬다. 거금 15만 원 들여서......
어제 mp3 귀에 꽂고 알렉스가 부른 건데 제목은 알쏭달쏭한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는데
슬프게도 노래엔 영 소질이 없어 보여 혼자 가만히 웃었다.
아들아, 그냥 기타나 열심히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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