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매에 독성분이 있어서 짓찧어 냇물에 풀면 물고기를 기절시켜 떼로 잡는다 해서 '때죽나무'라 이름 붙었다는 이 나무에 꽃이 한창일
때 멀리서도 날아오는 진한 향기에 저절로 코를 벌름거리곤 했다. 킁킁... 킁킁킁......>
올해 처음으로 매실원액을 낸답시고 조금 큰 항아리와 작은 항아리 두 개의 항아리에다 매실 반 설탕 반 1 : 1 비율로 매실을 담갔다. 해년마다 엄마가 내주는 매실원액을 받아 먹다가 받아 먹다보니 감질도 나고 동생 눈치도 슬쩍 보이고 해서 올해부터는 내가 담가 먹어야지 생각하던 터였다.
장날에 몇 번 굵고 통통한 매실들을 봤지만 양손엔 이미 다른 채소와 반찬거리들이 주렁주렁 들려 있어서 엄두가 나지 않아 남편 쉬는 날에 맞춰 장이 서는 날 한번 함께 장을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친구로부터 매실을 사지 않겠느냐고 전화가 왔다. 반색을 하며 그렇잖아도 사려고 벼르고 있던 참이라 했더니 시골집에서 매실을 파는데 무농약이어서 조금 못 생기고 크기도 들쑥날쑥 때깔도 좋지 않지만 영양가도 더 좋고 맛도 더 좋다고 했다. 게다가 택배로 부쳐준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 덥썩 샀다. 매실이 올 때쯤해서 매실원액 내는 법도 일러준다고 했다. 그건 친정엄마에게 물어봐도 되는데 친구는 조리사 자격증만 열 개이니 더 잘 알겠지 싶어서 그러라고 했다.
매실을 사기로 맞춰 놓고 산책로를 걸을 때 날이면 날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번갈아 가며 긴 장대를 들고와 살구를 따 가는 것을 보고 초봄의 쑥 사건이 생각났다. 쑥이라며 화단에 심어 놓은 감국을 뜯고 있던 할머니께 쑥이 아니라고 국화의 한 종류라고 해도 곧이 듣지 않고 뜯으시던 모습이 생각나 공연히 참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 화단에는 <감국> 이라는 팻말이 떡하니 꽂혔다.
지금 내가 저 분들에게 이건 매실이 아니예요. 살구예요. 한들 얼마나 곧이 들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편으론 저 푸르딩딩한 살구들을 따다가 무얼 하실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구를 매실로 생각하고 원액을 내서 마시면 매실 같은 맛이 날까? 때론 생각이 몸을 지배한다니 그럴 수도 있겠다, 어찌 됐건 그리 마셔서 기분만 좋다면 그도 과히 나쁘진 않겠다, 하는 생각도 들어 더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릿속으론 그 생각을 하면서도 눈길은 어쩔 수 없이 살구 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긴 장대 놀림을 한참씩 바라보게 되곤 했다.
매실이 오던 날, 오전부터 친구가 뻔질나게 전화했다. 요며칠 다른 해의 유월보다 훨씬 더웠는데 보냈다는 매실이 늦게 도착해 상할까봐 염려가 된다며. 더군다나 무농약이라 상처난 것도 더러더러 섞여 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친구네 시골집에서 올라온 매실은 시장에서 보았던 매실들보다 훨씬 못 생겼고 때깔도 더 나빴으며 크기도 들쑥날쑥이었다. 그래도 요즘 같이 약간 더울 때 좀 더 익은 매실로 담는 것이 서늘할 때 풋매실로 담근 것보다 맛있다는 친구의 말에 별 생각없이 기쁜 맘으로 매실을 씻어 소쿠리에 건져 서너 시간 물기를 빼고 매실이 12Kg이니 황설탕 3Kg짜리 세 개에다 백설탕 3Kg짜리 한 개를 섞어서 항아리에다 담갔다. 역시 친구가 알려준 대로 마지막엔 매실이 안 보이게끔 남긴 설탕으로 덮고 항아리 입구를 비닐로 덮은 후 개미나 단 것을 좋아하는 벌레들이 들어가지 않게 끈으로 칭칭 동여맸다. 다 끝내고 나니 어찌 그리 뿌듯하던지.....끼끼...
다음 날 오전, 또 득달같이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마도 궁금해서 한 전화겠지만 내가 먼저 매실 얘기를 꺼내지 않으니 일러준 대로 잘 담갔나보다 생각했는지 이런 저런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요즘 하는 조리사 자격증에 대한 공부 얘기, 여자들의 수다에서 빠질 수 없는 살 얘기, 친구들 얘기, 가족 얘기......
친구는 나보다 몸피가 더 있어서 나 정도가 딱 적당해 보이는지 지금이 얼마나 보기 좋은데 왜 살을 빼려고 하느냐고 연신 성화였다. 그런데 성화를 하면 뭐하나. 근 육 개월을 걷고 있는 데도 몸무게는 한결같음을 유지하고 있는데... 고작 1Kg이 오락가락하며 사람 약을 올리는데. 참 이상한 것이 옷 치수도 더 넉넉해지고 아랫배도 예전보다 들어갔는데 몸무게는 별 변동 사항이 없다. 피부만 맑아지고 혈색이 불그스레 해지니 피부 좋아졌다는 말만 간혹 듣는다.
사실,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영 먼 사람이었다. 소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건 아주 먼 유년시절에 내 머릿속에다 쾅쾅 박아준 운동신경 둔한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이였다. 초등학교 5,6학년을 내리 담임하셨던 선생님께서 체육시간만 되면 어찌나 어처구니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시던지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여서 체육시간이 왜 있는지 정말로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이깟것 안 하면 안 되나? 저 뜀틀을 뛰어넘지 못하면 그렇게 바보처럼 보이나, 아니 뛰기도 힘든 뜀틀을 어떻게 다른 아이들은 굴러서 넘기까지 하지? 영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막 생겨나는 게 체육시간이었다.
어느 해 운동회 날은 단상에 앉아 계시던 교장선생님까지 일어나셔서 내 둔한 운동신경을 칭찬하는 바람에 운동장이 웃음 소리로 떠들썩 할 정도였다.
그래도 사람이 한 가지를 못하면 다른 한 가지를 또 잘하게 돼 있지 않은가. 책 읽는 것은, 공상하는 것은 내 적성에 딱 들어 맞았다. 그래서 결혼하고 집에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남편과 책 읽고 공상이나 하던 내가 적당히 섞이게 되었다. 내가 관심있는 것에 남편의 관심이 조금씩 기울었고 운동과는 전혀 거리가 멀던 내가 서서히 운동을 하게끔 됐다.
이런 얘기를 듣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남편한테 고마워 하면서 살아라. 니가 처녀 적보다 얼마나 얼굴이 좋고 환해 보이고 성격이 좋아진 줄 아니. 너 예전에 좀 까칠하고 우울해 보였잖아. 그리고 모습도 깡말랐던 아가씩 적보다 지금이 훨씬 넉넉해 보여서 좋다. 너, 지금이 딱 좋다. 얼굴도 더 예뻐졌다. 그러니 남편한테 고마워 해."
멀리 출장 간 남편에게 전화해 이 얘기를 전하니 남편이 그런다.
"그럼, 당신은 내가 사랑 듬뿍줘서 지금처럼 만들었잖아. 내 작품이야. 나한테 고마워 해."
칫, 언젠가 술김에 나한테는 <영양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놓고선, 자기한테는 고마워 하라네.
하긴 내가 좀 영양가 없긴 해. 아직도 현실감각이 좀 떨어져서...... 이따금 소녀 같다는 소리나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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