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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산책로에서

by 눈부신햇살* 2008. 4. 26.

 

이런 길이 철길 옆으로 길게 뻗어 있다. 끝까지 빠른 걸음으로 헉헉거리며 갔다 오면 약 1시간 반쯤 걸린다.

왼쪽에는 겨울내내 마른잎을 그대로 달고 있다가 봄이 무르익자 그제서야 잎을 떨구고(그게 참나무류의 특징이라지만) 

이제 막 새순이 돋는 대왕참나무와 매실나무, 그 뒤로는 메타세콰이어와 스트로브잣나무가 있다. 오른쪽으로는 벚나무와

역시 대왕참나무가 한두 그루씩 번갈아 있고 사이사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중국단풍과 연둣빛 새순이 한창 예쁜 단풍나무와

일찌감치 봄부터 붉어서 가을까지 붉은 홍단풍나무, 이제 꽃이 한창인 꽃사과나무 몇 그루, 무더기로 심어 놓은 무궁화가

군데군데 있고, 산수유나무가 대여섯 그루씩 몇 군데 있다.

또 버즘나무라고 하는 플라타너스와 느티나무, 회화나무가 있고, 키 작은 나무로는 조팝나무와 산당화라고도 하는 명자

나무, 어릴 적 우리밭에 가는 길목에 있었던 향이 좋아 유난히 벌이 많던 찔레를 떠올리게 하는 찔레가 있고, 철길가로는

개나리가 봄에 노랗게 노랗게 샛노랗게 피어났다.

요즘은 철쭉과 영산홍의 계절이라 군데군데 하얗고 불그스레하게 피고 있다.

 

풀과 나무에 대해서 아직도 초보 신세를 면치 못한 나는  왼편의 저 매실나무(도 아닌 살구나무이었던 것을)들을 이른 봄 벚꽃이라 생각하며 역시 꽃은

벚꽃이야! 하며 황홀해 했다. 어찌된 일인지 우리집에서 내려다보는 도로의 가로수들도 놀이터에도 벚나무를 심어놔서

문만 열면 꽃천지였다. 매일 매일 아침마다 문을 열며 커튼을 젖히며 남편에게 말했다.

"아, 우리 정원이다! 저층의 장점이 바로 이거로구나!"

고층은 고층대로 밤에 내려다보는 일산의 야경이 그만이라고 작은녀석의 친구가 말했다지만.

 

아무튼 얼마 전부터 저 나무들이 열매를 달기 시작했는데 버찌가 달리는 것이 아니고 매실(풋살구가 달렸겠죠)이 달리는 것이다.

"오 마이 갓! 아, 이 미련한 눈이 매화나무를 몰라보고 벚나무라고만 생각했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당연히 오른쪽 나무들엔 버찌가 달렸다.

굳이 옹색한 변명을 하자면 봄에 꽃놀이 나온 사람들이 그 나무들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면서 나와 똑같은 생각과 말들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와, 벚꽃이 참 아름답다! 근데, 이 벚꽃들은 유난히 더 이쁘다!"

나는 아직도 꽃만으로는 벚꽃과 매화와 살구꽃을 자두꽃과 배꽃을 구별하지 못한다.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꽃송이가 커서 보는 단박에 눈에 들어오니 순간적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에 비해 화살나무의 꽃은 꽃송이도 작고 색도 새순과 비슷한 연두색으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아, 너 참 아름답구나! 이렇게 튀지도 않게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다니. 그래도 누군가 들여다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면 그

아름다움에 진심으로 감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한눈에 쏙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보면 볼수록 좋은 사람이

있듯이.

화살나무는 저 가지에 붙은 코르크 날개가 특징이다. 가을이면 선홍색의 단풍으로 또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올해 실물로 처음 접하게 된 <봄맞이꽃>.

어찌나 많이 수북하게 피었는지 잔디밭이 온통 안개꽃 밭이다.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 꽃의 아름다움을 잘

모를 것이다. 남편에게 지나가며 얘기했더니 이런 자잘한 꽃 자기는 싫단다. 큼지막한 꽃이 좋대요.

 

 

이른 봄엔 나지막하게 피더니 지금은 키가 훌쩍 커서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는 <꽃다지>도 지천으로 피었다.

단테님 블로그에 가면 깨알이나 콩알만한 꽃들을 보름달만하게 찍어오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속을 것이다. 실은 얼마나

작고 작은 꽃들인데. 정말 눈에 띄지도 않은 꽃마리나 별꽃, 꽃다지 등을 대문짝만하게 실어 놓으면......

단테님, 흉보는 것이 아니고 칭찬입니다!!!

 

 

봄에 붉은 새순이 나오길래 자엽자두나무인가 했더니 아니다.

꽃도 어두운 붉은색으로 제법 크게 달리더니 점차 분홍색으로 바뀌고 나뭇잎도 더러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붉은 느낌이 나는 나무다. 붉은색 잎에 붉은색 꽃이 피니 맨처음엔 꽃이 핀 줄도 몰랐다.

요즘 조경할 때 가장 많이 심는 꽃사과나무의 한 종인 Malus Hapo인 듯 하다.

꽃사과는 중학교 때 교정에 겹꽃나무와 홑꽃나무가 일렬로 쭉 늘어서 있어서 가을이면 붉은 꼬마사과를 따먹기도 하던

친숙한 꽃인데 이 종은 처음 봤다. 올가을엔 이 나무의 열매도 맛볼수 있을까.

 

 

꽃에 무덤덤한 남편이 감탄한 산철쭉의 아름다움.

아파트단지내에도 산철쭉과 영산홍이 울긋불긋 화려하게 한창이다.

남편이 화려한 것을 좋아하던가? 사람은 소박한 사람을 좋아하더니......

 

 

 

풍동의 애니골 카페촌에 갔다가 어느 음식점 앞에 핀 <한련화>를 담아왔다. 그러고보니 잎이 연잎을 닮았다.

저 잎도 침을 뱉으면 또르르 안으로 몰리려나? 잉? 그건 꽃에 대한 모독인가.

웬걸, 연밭에 갔더니 모두들 연잎에 침 뱉어서 또르르 구르는 모양을 즐기더라.

언제 한번 다시 가서 저 잎에 침을 뱉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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