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퍼머를 했다. 어제도 자주 듣는 그 말을 어김없이 들었다.
"인상이 참 좋아요."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접대성 멘트죠?"
하고 물었더니 웃으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 놓았다. 아무렴, 인상 나쁘다는 소리보다는 백 번 천 번 듣기 좋은 말이어서
시종일관 나는 착하고 밝은 표정을 짓느라고 조금 신경 썼다. 조금만 방심해서 무심하게 앉아 있으면 입꼬리가 축 처지며
바보 같은 표정이 되니까. 육심원의 저 그림 속의 여자처럼 입꼬리와 눈꼬리를 살짝 올리고 이쁜 척......
하하, 이 나이와 이 얼굴에 이쁜 척은 하나마나이니까 그냥 인상 좋다는 말에 부응해 마음씨 좋은 사람인 것처럼.
부평에 살 때, 단골 미용실에 가면 언제나 머리숱이 너무 없다고 했다. 그럼 난 아가씨 적에 파마만 하면 사자갈기처럼
되던 그 많던 머릿카락은 다 어딜 가고 이제 숱없다는 소릴 듣는가, 반신반의하며 심드렁하게
"그래요?"
하고 대꾸했다. 그러면 여기가 어떻고 저기가 어떻고 하면서 머리에 대해 온갖 소리를 늘어 놓았다. 때로는 그냥 머리만
매만지면 좋을 텐데 왜 자꾸 이런저런 말을 늘어 놓는지 귀찮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곳에 이사 와서 머리를 자르러 옆 단지 상가의 미용실에 갔더니 부평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요금을 받으면서
머리숱이 굉장히 많다고 했다. 공연히 그 말이 반가워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래요?"
여지껏 이사 오기 전 다니던 미용실에서는 늘 머리숱이 적다고 했다며 못미더워하는 눈치를 보이자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돌멩이 날아온다고 했다.
그 얼마 후,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서 수다 중에 그런 말을 했더니 정말이란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란다. 머리숱이 많아도
너무 많단다. 그런가보다 했다.
어제 퍼머를 하러 가면서 커트 요금도 확 차이나게 비싸니 퍼머 요금은 또 얼마나 차이나게 비쌀까 싶어 다른 미용실로 갔다.
머리말기 전 커트를 하던 미용사가 대뜸 그런다.
"머리숱이 너무 없어요."
뭐여, 어떤 말이 진짜여. 긍께, 누구 말을 믿어야 되냐고? 이 사람들이 시방, 남의 머리를 갖고 뭐라 캐쌌는가말이야, 말이야......
뭐, 머리도 남보다 훨씬 큰데 머리숱 없고, 머릿카락도 가늘어졌다면 오히려 다행이지. 조금이나마 큰 두상이 작아 보일 테니까......
하고 위안을 삼았다.
오늘은 3,8일 장이 서는 날이라 시장에 갔다. 발 디딜틈 없이 복잡한 속을 헤집고 다니기가 불편하기는 해도 야채값이 유기농이니 친환경재배니 하는 대형슈퍼와 확 차이나서 되도록이면 장날을 기다렸다가 몰아서 사온다. 그러다보면 양팔이 빠져 나가게 아프다. 남편은 아예 트레이닝복을 입고 배낭을 메고 가서 사오라고 했지만 그것도 우스운 폼새일 것 같아 오늘도 지난 번 한샘가구에서 사은품으로 준 튼튼하게 생긴 시장바구니용 천가방을 손가방 속에 챙겨 넣고 집을 나섰다. 시장이 가까운 곳의 주유소가 붐비길래 뭔일인가 했더니 촬영 중이다.
이곳은 방송국이 많아서인지 촬영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산책로로 가는 육교 위에서, 고양시 교육청에 볼 일
보러 갔다가 그 옆 아람누리 극장 앞에서 촬영하는 모습도 봤다. 더 가까이는 우리 라인의 엘레베이터에서 촬영하는 모습도 봤다.
두리번거려도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길래 횡단보도를 건너 시장 속으로 들어갔다. 장을 보고 돌아나오는데 아까 그 주유소 앞에
이번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모여 있다. 호기심 많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나인지라 냉큼 그 무리들 뒤로 가서 섰다.
기웃기웃하는데
"윤다훈이다!"
"이경실이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 어디 나도 좀 보자. 고개를 길고 빼고 까치발을 해서 들여다 보니 어, 정말 윤다훈과 이경실이 광고를 찍는지
젊은 여자 둘과 나란히 서 있다. 문득 반갑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저들은 나를 모른다. 그래도 반갑다.
약간 가무잡잡하고 보통 키의 윤다훈도 반갑고, 생각보다는 키가 크지 않은 이경실의 날씬한 맵시도 반갑다. 어지간히 나대는 모습으로만
방송에서 보다가 조신하고 다소곳하게 서있는 모습이 낯설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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