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또 하루

복 받았다.

by 눈부신햇살* 2007. 11. 26.

 

< 바램 - 서정 육심원 >

 

 

 

요즘 자주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복 받았다>이다. 일산으로 이사 간다고 한 다음부터 듣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드리는 가정예배의 인도자인 속장 권사님께서는 예수 믿고 복 받은 것이라며 그 점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기회만 있으면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고, 때론 눈 슬쩍 감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고, 난처한 질문에는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교회는 주일 낮 반짝 한번 얼굴 내미는 나의 어디를 하나님께서 어여삐 보셨을까? 그 점만 빼면 내가 남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 착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복을 주셨을까? 비록 교회는 건성으로 다니는 것 같아도 마음만은 늘 주님께로 향해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아시고 복을 주셨을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날라리 신자 같은 내 맘 속에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 말씀을 마음속으로 가만히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내가 큰 부자가 되어서 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의 처지와 비교해서 서민들이 모여 사는 우리 동네에서 부를 상징하는 단어인 듯한 일산으로 간다고 하니까 어쨌든 지금보다는 나아진 형편을 생각하고, 부동산으로 재산을 증축하는 시절은 지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부동산 값이 튀어야 그나마 큰 돈을 만지게 되는 경우가 생기니까 그리들 말하는 것이다. 정말로 부자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일이지만. 그 복 받았다는 말이 듣기 싫은 것은 아니어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슬몃 웃음이 나오곤 한다. 어쩌면 정말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얼마 전, 이비인후과에 두 차례 가게 됐다. 큰녀석이 텔레비전을 볼 때나 기타를 칠 때,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 코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입을 반쯤 벌린 영구 같은 모습으로 숨을 쉬고 있어서였다. 그런 것에 약간 무딘, 아픈 것을 몸으로 잘 때우는 나에 비해 정확하게 진단을 받고 치료받는 것을 현명한 처사라고 여기는 남편이 아이를 닦달했다. 넌 불편하지도 않냐? 병원에 안 가보냐? 남편은 그런 걸 가지고 아이 엄마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형은 아니라서 아이를 몇 차례 나무라는 것을 보고 아이가 좀 시간이 나는 요일에 병원 문이 닫히기 전 급하게 달려갔다. 그렇게 상냥한 의사 선생님은 생전 처음 보았다. 만면에 웃음이 흐르는 얼굴로 말투 또한 상냥하기 짝이 없어서 그야말로 상냥함으로 똘똘 뭉친 듯한 여의사가 확대경(?)으로 콧속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더니 축농증인지 아닌지 피검사도 해보고 엑스레이도 찍어보자고 했다. 콧속이 많이 부어 있어서 많이 불편하고 머리도 아펐을 텐데, 그 머리 아픈 것 때문에 집중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괜찮았냐고 아들 녀석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아들 녀석은 도리어 난데없이 꿀밤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의사가 멋쩍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길래 아이가 불편하다고 병원에 가자고 해서 온 것이 아니라요, 보는 저희가 불편해서 치료받으러 데리고 왔어요, 하며 증세를 요모조모 얘기했다.

의사가 아이에게 말을 건넬 때마다 호칭을 자네, 자네라고 해서 독특한 호칭이다, 라고 생각했다가 아, 이 분이 지금 아들 녀석이 교복 차림이 아닌 사복으로 검정 재킷에 흰색 남방을 받쳐 입고 양 귀에 귀걸이가 매달려 있으니 대학생쯤으로 보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처방대로 바로 위층의 병원으로 올라가 먼저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피를 뽑는 곳에 있던 푸른색 가운의 여자가 옆의 의자에 앉아 있는 나와 아들을 번갈아보다가 엄마세요? 하고 물었다.

"네."

정말 모르고 물었을까. 눈을 크게 뜨더니

"엄마가 굉장히 젊어요."

했다. 풋, 웃음이 나왔다.

"제가 젊은 것이 아니라요, 애가 어려요. 지금 대학생쯤으로 봤지요?"

"예? 아, 예."

"그럼 대학생인데 엄마가 따라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셨겠네요?"

"예? 아녜요. 요즘은 엄마들과 아들들이 친해서 곧잘 같이 와요."

그런다. 늦은 결혼이어서 엄마가 나이 들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없잖아 들기도 하면서 아이를 키웠는데 아이의 조숙한 외모 때문에 뜻하지 않게 가끔 엄마가 너무 젊다는 소리를 듣게 되니 기분이 이상야릇하면서도 그리 나쁘지 않다. 아이는 아이대로 대학생쯤으로 보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하긴 그맘땐 일찍 어른이 되고 싶은 법이니까.

 

일주일 후에 결과를 보러 갔더니 축농증이 아니고 알레르기 비염이라고 한다. 알레르기의 주범은 나인 것 같아서 어째 살짝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알레르기 체질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큰 녀석은 알레르기 비염이 있고, 작은 녀석은 경미하긴 하지만 아토피 피부염이 있나 싶어서.

큰 키에 날씬한 몸매, 날렵한 운동 신경은 아빠를 닮아서 고마운데......

그래도 반듯한 내 코를 닮지 않고 살짝 휜 아빠 코를 닮은 것은 불만이니 골고루 물려 받아서 좋은 것도 있고 싫은 것도 있다. 남편은 모공이 큰 딸기코인 내 코나 살짝 휜 매부리코나 거기서 거기라지만.

 

일주일 전에 하도 남편이 성화여서 옆의 종합병원 피부과에 갔다. 병원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너무 북적대서 놀란다. 아픈 사람이 참 많구나.

종합병원은 진찰료가 비싼 데다 특진비까지 붙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까지 해서 6만 원 돈이 나왔다. 조직 검사를 한다고 살을 조금 떼어내고 각질을 긁어내더니 배양균 검사 결과는 한 달 후나 나오는데 각질에서 무좀균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확한 병명이 습진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다른 병원 6개월을 다녀도 좀처럼 나을 기미가 안 보이던 발이 희한하게도 거의 말끔해졌다. 일주일 전에 내 발을 보고 헉, 숨을 몰아쉬던 의사가 오늘은 방긋 웃으며 편안해지셨네요, 한다. 네, 약이 잘 듣더라고요, 하며 마주 웃었다. 이로써 의사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가? 또 말끔하고 고운 발로 내년 여름에는 폼나게 샌들을 신을 수 있으려나? 그런 복을 받고 싶어라~

 

 

 

 

 

'하루 또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의 일상  (0) 2008.04.10
사월의 어느 날  (0) 2008.04.03
가을이 간다  (0) 2007.11.19
11월의 여섯째 날  (0) 2007.11.06
계양산에 오르다  (0) 2007.10.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