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청소해도 하루만 지나면 웬 먼지가 그리 수북하고 집꼴이 그리 어수선한지
가끔은 꾀가 나고 게으름도 피우고 싶어진다.
다른 식구들은 내가 집에 있으니까 안심하고 어지르고 나간다. 나간 자리엔 머릿카락이 수북하고
침대 위는 함부로 해놓은 이불이 뒹굴고 있고 빨랫감이 한아름이다.
과히 성격 좋은 편이 아닌 나는 가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조금만 신경 써서 치워주고 나가면 좋을 텐데.
어제 아침에도 라디오를 크게 켜놓고 이문세 아저씨의 음성을 들으며 청소를 하고 있는데 딩동 문자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 어떻하죠ㅜㅜ 나 수행평가하고 집에두고왓어요ㅜ 이거 오늘안내면 미제출처리될지도모르는데ㅜ
아니, 엊저녁에 커피까지 타다 마시며 열심히 만들더니 놔두고 갔다고. 하긴 아침에 급하고 까칠한 성격의 아빠 차를 얻어 타고
가려면 느려터진 성격에 정신이 없기도 하겠지. 어쩔 때 보면 제 아빠의 급한 성격에 맞추느라고 조금 과장해서 손을 떨어가며 조바심
치며 운동화 뒷축을 끌어올리며 신발을 신고 허겁지겁 따라 나가던데.
뭐, 그도 저 좋아서 하는 짓이니까 암말 안하지. 우리가 그 먼곳까지 학교를 보냈으면 어지간히 투덜댔을 것이다. 그 놈의 음악이 뭔지.
신설학교엔 밴드부가 없다며 이곳의 학교로 전학하지 않고 버스로 가면 약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곳의 학교에 다니니 마침 그 근처가
직장인 제 아빠가 태워다 주지 않으면 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곳을 다니고 싶을까.
시외버스도 30분 간격으로 있고, 그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은근히 많아서 아침이면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같아 힘들다면서. 행여 제 아빠가 출장이라도 갈라치면 저녁부터 걱정이 앞서면서. 그 마음을 알아서 요즘엔 웬만하면 아침 일찍 내려가서 급하게 일을 마무리짓고 올라와 다음 날 아침 학교까지 큰녀석을 태워다 준다.
그런데 그렇게 먼곳까지 숙제를 가지고 오라는 뜻인가 해서 화가 팍 치밀었다. 왜 이렇게 매사에 덤벙대나.
한 며칠간은 지갑을 가지고 가지 않아 제 동생에게 시외버스에서 내리는 곳까지 지갑을 가지고 마중 나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더니
이제는 과제물을 놓고 가 나까지 고생시키나.
- 어떡하라고?
괘씸하다는 맘을 담아서 답문자를 보냈더니
- 혹시라도 부평 올일 있음 갔다달라고요--
혹시라도? 내가 그 먼곳까지 갈 일이 뭐가 있다고?
- 그 먼 데까지? 내가 정말 못 산다 너 몇 반인지도 몰라
화가 치미니까 갑자기 학년초에 들었던 반도 생각나지 않는다. 작은녀석은 아파트단지 바로 아래 엎어지면 코 닿는 데 다니니까 얼른
뛰어가서 갖다 주면 되지만 얘는 학교까지 가져다 주려면 마을버스 타고 시내로 나가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부평역에 내려서 다시
택시 타고 학교까지 가야 한다. 빠르면 1시간 30분 늦으면 2시간이 걸릴텐데. 슬슬 짜증이 난다.
- 부평 올 일 없음 안와도 돼요 전교등수 몇 등 깎고말죠뭐
어, 이 자식이... 더 화가 치민다.
- 이 자식이 어따대고 협박이야 몇 반인데?
막말이 나온다. 녀석은 협박이란 말이 걸리는지 뭐가 협박이냐고 오히려 반문이다. 내가 등수에 약하다는 걸 알고 그걸 공격한 것을 말
하는데 알고도 짐짓 모르는 체 하는 것인지 둔한 성격에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어쩌겠어. 아들 등수가 내려간다는데. 수업은 듣는지
마는지 몇 번 더 문자를 주고 받은 끝에 결국은 가져다 주기로 합의를 봤다.
기름값이 올라 운수업체가 애를 먹는다더니 한가한 낮 시간에는 배차 간격을 더 늘렸는지 좀처럼 시외버스가 오지 않았다. 약 25분 가량
기다렸다가 시외버스에 오르며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 이제 3000번 탔다
그로부터 1시간 40분쯤 후에 학교에 도착했다. 마침 점심 시간이어서 녀석이 교문 쪽으로 내려와 교실까지 올라가는 수고를 덜었다.
아까는 그렇게 밉더니 그래도 잘 생긴 아들 얼굴 보니 웃음이 실실 났다. 몇 번 줘박는 시늉을 하며 과제물을 건네니 녀석도 실실 웃으며
미안해하며 고마워했다.
- 친구들이 엄마 맛있는 저녁 사드려야 한대요
- 됐다. 과제물이나 잘 내라.
- 그냥 가실라고요?
_ 그럼 뭐 해. 나 갈란다.
돌아서 오다 생각하니 부평까지 왔으니 이제 그만 오려고 했던 피부과에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완전히 깨끗해지지 않아서 이참에 뿌리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으로. 3년 정도 앓던 걸 한 달에 한 번씩 6개월을 다녀 나아가고 있다.
샌들을 신느라고 약을 바르지 않고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약 열심히 발라야한다고 한마디 하셨다. 네,하고 공손히 대답했다. 마음 같아선 고마워서 맛있는 거라도 사드리고 싶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 올라타 점심 대신으로 산 백설기를 뜯어 먹었다. 시외버스는 등받이가 높고 승객이 뜸한 시간이라 자리에 앉아 군것질하기 딱이다. 인천을 벗어나는 것을 보며 졸다가 일산 시내에서 눈을 뜨고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타지 않고 운동 삼아 한들한들 걸었다. 간혹 마스크를 낀 사람들을 보고 그제서야 어젯밤 뉴스에서 봤던 황사가 심한 날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갑자기 목이 따끔거리는 것이 느껴지고 얼굴도 버석거린다.
약 1시간 가량 걸어서 집 옆의 산책로에 도착했다.
저렇게 한창 예쁘던 찔레꽃을 어느 하루 몽땅 가지들을 쳐내 이상한 몰골로 만들어 놓았다. 많이 아쉬웠다.
산책로에는 어김없이 운동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오가고 나는 한들한들 할 일을 마친 가뿐한 마음으로 걸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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