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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14

작은녀석의 별명 무대포, 납작수, 포동이, 준칠이, 찰고무, 닥종이인형. 이상은 작은녀석의 별명이다. 납작수는 돌 되기 전까지 어찌나 순한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심지어는 목욕물 속에 넣어 놓아도, 목욕을 시키고 있어도 자고 있어서 순하다고 늘 눕혀만 놓았더니 뒷통수가 깎은 듯이 납작해서 붙은 별명이다. 포.. 2005. 6. 18.
비 오는 날의 단상 이렇게 비가 내리면 경사진 언덕 끄트머리의 작은 초가집 마루에 앉아 앞 솔숲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듣던 내 유년이 떠오른다. 내 생각은 언제나 유년과 맞닿아 있다.꽃 한송이를 봐도, 풀 한포기를 봐도,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아름다움은 쓸쓸함과 연결이 되어 있을까.내 유년은 언제나 쓸쓸함이란 단어와 함께 떠오른다. 쓸쓸함을 안고 바라보는 풍경들은 언제나 가슴 속에 사무치는 그 무엇인가를 남겼다. 봄이면 밭 가득, 동네 가득 피어나는 노란 물감을 들이 부어 놓은 듯이, 자신의 가장 예쁜 색으로 환장할 듯이 유채꽃이 피어나고, 봄 햇살이 여름 햇살 못지 않게 강렬하게 내리쬐고 그 밭에서 벌이라도 윙윙거리면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가목울대를 꼴깍거리며 내려 갔다.. 2005. 6. 10.
친구 [ 그림 - 서정 육심원 ] 몇 살적부터 친구라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받아 들였을까? 초등학교 시절에 삼총사를 본떠서 이름 붙인 '사총사'라는 친구들이 있었다. J, N, M, 그리고 나. 졸업 사진 찍을 때, 넷이서 사총사 기념으로 찍은 사진도 오래토록 지니고 있다가 엄마와 동생들 의 "너무 못 생겼어! 그때는 왜 그렇게 이상하게 생겼었어? 크느라고 그랬나? 시골 바닷바람에 망 가졌나?......" 하는 놀림에, 그 놀림의 거슬림이 최고조로 달하는 날 그냥 북북 찢어 버렸다. 이제사 아쉬움이 크다. 초등학교 졸업 후 이십대 때에 잠깐 얼굴 보고, 그후로 십오여년만에 다시 얼굴을 보게 된 우리. J는 그때나 지금이나 명랑하고, 인정 많고, 마음씨 좋은 넉넉한 전형적인 아줌마 타입이다. 살림 도 잘할 .. 2005. 5. 29.
세 살짜리의 아빠 흉내 결혼한 지 3년 만에 큰아이가 세 살, 작은아이가 이제 백일을 갓 지났다. 큰아이가 아들이라 둘째 는 딸이길 원했건만 둘째 아이도 아들이다. 바라던 딸이 아니라 내심 서운함이 큰데, 주위에서 겁 주는 소리 또한 크다. 아들 둘 키우다 보면 느는 건 주름살이요, 커지는 건 목소리뿐이고, 어찌나 우악스럽게 놀아대는지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다 보면 또래들 엄마보다 쉬 늙는단다. 그럴 때면 괜히 둘씩이나 낳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커가는 아이들의 재롱 속에 그런 생각은 봄 눈 녹듯 사라지곤 한다. 특히 세 살짜리 큰아이의 아빠 흉내가 곧잘 우리를 웃기곤 한다. 하루는 집안 청소를 하다가 무심코 골목에서 아이들과 놀려고 나가는 큰아이의 행동을 보고 혼자 서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 제 아빠가 출근할 때 현관에서 구.. 2005. 4. 22.
흐린 날에... 흐린 하늘 밑 어디쯤 내가 있는 것 같다....... 가는 길도 오는 길도 잿빛 하늘이 낮게 낮게 드리우고 비가 쏟아졌다. 잠결에 설핏설핏 차창과 차지붕을 탁탁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어 바라보면 창밖은 여전히 회색으로 잠겨있다. 그 풍경에 따라 올라오는 어릴 적 기억 한 토막. 아홉 살 때, 작은아버지와 둘이서 밤 완행열차를 타고 아무것도, 아무 형상도 보이지 않던 암흑 속을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어둠 속을 철커덕철커덕 기차 바퀴 구르는 소리에 묻혀 서울로 올라오던 멀고 먼 유년의 기억들...... 유리창은 거울이 되어 작은 계집애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이고, 그 옆에 혹 '선데이서울'이나 '주간경향'을 읽는 모습이거나,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든 모습이거나, 삶은 달걀을 들고 있는 모습의 작은아.. 2005.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