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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6

산책로에서 어디 갔다가 돌아오는 길,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미리 내려 산책로로 접어든다. 어느 한때 내가 날마다 걷다시피 했던 길 위의 풍경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걷는 길. 처음 보았을 때 어린 나무였던 길가의 나무들은 흐르는 세월을 따라 어느덧 훌쩍 자라 커다란 나무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15여 년 전 산책로의 어린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아직 짧을 때, 쏟아지는 오전의 맑고 눈부신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걷다 보면 행여 기미 생길까 노파심이 들어 흡사 무장 강도의 복장을 하고 걸었더랬다. mp3 이어폰 귀에 꽂고 그 햇살을 담뿍 받으며 날마다 열심히 걸었던 결과, 걷기 다이어트에 성공해 4~5kg 빠진 내 모습을 보고 친구는 얼굴 버렸다 타박하고 모임에서는 무슨 일 있었느냐고 염려 가득한 표정으로 물.. 2022. 9. 2.
뒷산이 참 좋다 오랜만에 뒷산에 올랐던 날, 우리가 얼마 만에 이 산에 오르는 것인가 되짚어보니 1년 8개월 만에 오르는 것 같다고 계산했는데 지난 게시물을 뒤져보니 7개월 만에 오르는 산이다. 큰아들 부부가 우리나라로 들어온 지도 딱 그 개월 수인데 왜 1년씩이나 착각했는지 모르겠다. 이젠 내 기억력을 믿을 수가 없네...... 그런데 왜 남편은 같이 헷갈렸을까? 남편의 기억력도 믿을 수 없네...... 그다지 예쁜 산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거기 있어 늘 고마운 산. 그 산에 들자마자 참 좋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남편 때문에 떠오른 노래, 남편이 참 좋아하는 노래, 남편 휴대폰의 컬러링이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면 그 생각부터 드는 노래, 양희은의 를 부르며 산을 한 바퀴 돈다. 햇살이 참 좋다 네가 있어 참 좋.. 2022. 8. 30.
햇볕은 쨍쨍 땀방울은 줄줄 8월 중순 한낮 햇볕의 기세는 아직도 대단하다. 다리가 검게 타는 것은 괜찮지만 팔과 얼굴이 타는 것은 마음에 걸려 반바지에 모자 쓰고 팔 토시 끼고, 눈부심을 방지하기 위해 선글라스 쓰고 나름 완전 무장 복장으로 호수에 갔다. 올해는 주로 해 질 녘에만 신정호를 한 바퀴씩 걸었음에도 몇 번의 여름 나들이 때문인지 발등이 까매지고 샌들 자국이 하얗게 남았다. 수국은 꽃송이가 커다래도 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던데 나무수국의 꽃들은 고개를 떨군다. 커다란 꽃송이. 지나칠 때면 향기도 나는데 무슨 향기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 옛날 엄마 화장대의 분 냄새? 어린 날 시골집의 생울타리였던 무궁화. 까만 진딧물이 어찌나 극성을 부리던지 꽃 보고 다가갔다가 깜짝 놀라곤 했는데 신정호 무궁화나무들은 멀쩡하다.. 2022. 8. 18.
아직 끝나지 않은 연꽃의 시절 일제히 한꺼번에 우르르 피었다가 우르르 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한쪽에선 연밥을 달고 있고, 더러는 갈색으로 익어가고 있는데 한쪽에선 이제 막 곱게 피어나고 있었다. 쨍쨍한 햇볕 무섭다고 해 질 녘에나 걷다가 오랜만에 한낮에 찾아간 신정호. 연꽃들은 아직도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네. 초록 바탕에 분홍 부처꽃의 색감이 돋보인다. 어느 흐린 날 해 질 녘에 기차 보다 느린 전철이 한참을 가로질러 간다. 2022. 8. 18.
한여름날 찬란했던 순간들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 복 효 근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 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 초기 블로그 때 친구 블로거 님께서 내게 보내주었던 이 시가 비 온 뒤 토란잎이 아니고 연잎 위에 궁그는 물방울을 보노라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물론 나는 저 `토란잎' 자리에 `연잎'을 갖다 넣어서 생각해본다. 연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는 물방울과 궁글궁글 궁글며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을. 연꽃의 화려하고 찬란했던 자리엔 어느덧 연밥으로 남아.. 2022. 8. 12.
여름날의 추억 그리운 내 님 꿈에서나 뵈올 뿐 님 찾아 나설 때 님도 나서면 어쩌나 다른 밤 꿈에 님 찾아 나설 때는 같은 시간 같은 길에서 만났으면 - 꿈길 -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더냐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 베혀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 날 밤에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 하면 명월이, 명월이, 하면 황진이가 떠오를 것이다. 외모로 보나, 풍류의 멋으로 보나 황진이의 발끝도 건드릴 수 없는 나이지만 내게도 '명월아!'하고 부르던 분이 계셨다. 그래서 그 부름이 황송스러웠냐 하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아 달라고 누누이 정정해서 부를 것을 말씀드렸.. 2006.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