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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5

나의 살던 고향은 남편이 내 고향으로 출장을 간다면서 따라가려느냐고 물어서 냉큼 따라나섰다. 남편이 볼 일을 보는 동안 나는 먼산 바라보기나 하였다. 또 다른 볼일을 보는 동안 군내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시골에도 저렇게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는구나. 장이 서는 날이면 할머니와 둘이서, 때로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먼 길을, 하얗게 흙가루가 폴폴 날리던 신작로를 한없이 타박타박 걸어서 왔었던 면소재지 장터 옆 대로.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까무잡잡하던 가시나가 이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와서 보니 감개무량은 고사하고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아볼 길이 없다. 언젠가 방송에서 보았다는 낙지 맛집을 찾아갔다. 어찌나 허름한지 정말로 영업을 하는지 긴가민가 할 정도의 건물이었다. 싸인지가 온통 벽을 장식하고, 간혹 유명인의 싸인도 .. 2023. 5. 13.
낙지 열 마리 방금 낙지 열 마리가 들어왔다. 5시 반쯤 아이들은 농구 경기를 보러 간다고 부천 경기장에 갔다. 그 근처에서 퇴근 후 운동을 하던 남편이 경기가 끝나면 아이들을 태워서 집에 온다고 했다. 느긋하게 밥을 안치고 두부를 부치고 방을 닦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초등학교 동창인 고향 친구이다. "응." 하고 받았더니 "야, 너네 집이 부개역에서 머냐?" 하고 묻는다. "아니. 한 정거장 차인데." 자기가 지금 부개역에 와 있으니까 부평역으로 얼른 나오란다. 시골에서 낙지가 올라왔는데 혼자 먹기는 너무 많은 양이니까 나눠 먹잔다. "야, 그냥 니네 식구끼리 먹어." 말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다는데 박절하게 가라는 것도 그렇다. "알았어. 나갈게. 남부역 방향으로 나와라." 하루 종일 .. 2006. 11. 10.
고구마 < 사진은 다음 검색해서 한 장 퍼왔음> 고구마는 열대성 식물이라서 아주 덥지 않고서야 좀처럼 꽃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고구마로 유명한 고장에서 살았어도 고구마꽃을 한번도 보지 못했었다. 고구마꽃이 피면 고구마의 작황은 좋지 않다고 한다. 아마도 뿌리로 가야할 영양분이 꽃에게로 나뉘.. 2006. 10. 11.
안면도에서 안면도에 갔다. 해마다 여름이면 남편의 고향 친구들과 동네 뒷내에서나, 그 동네의 유명한 충남에서 두 번째로 크다던가 하는 저수지 근처에서 놀다가 이제는 동네를 좀 벗어나서 다른 곳엘 가보자고 의견을 모은 다음 첫 번째로 움직인 곳이다. 안면도는 남편이 자주 출장을 가는 곳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쪽의 업무를 맡고 있는 남편은 어쩔 땐 내 고향 근처의 해남이니 광주니 영암, 영광을 다녀오기도 한다. 일 때문에 가는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가끔씩 부럽다. 가장 부러웠던 것이 몇 년 전에 독일에 다녀온 것이다. 일 때문에 가는 것이어서 독일 구경은 별로 하지도 못 했다고 하는데도 다녀와서는 그 사람들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몇 년 살다가 온 사람처럼 우려먹곤 했다. 남편이 자주 가는 안면도이니 만큼 남편이 안내를.. 2006. 9. 11.
무료함 무료함 어린 날에 어른들은 들로 나가고 혼자서 빈 집을 지키노라면 알 수 없는 슬픔이 스멀스멀 덮쳐 왔다 텅 빈 마당, 텅 빈 동네에 뜨겁게 햇볕이 부서지고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여름 한낮 지나친 무료함에 어린 계집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장독대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닫었다 항아리에 가득 찬 간장에 얼굴을 비춰보고 그 속에 담긴 파란 하늘을 들여다보고 뒷뜰을 어슬렁거리다 무심한 풀을 짓뜯어 씹어보다 마당 한켠에 높게 쌓인 보릿대 낟가리 위에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보다 아무도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방문을 확 열어 젖혀보면 서늘한 어둠만 존재했다 모두다 어디 갔는가 어디 숨었는가 무료함이 빚어내는 외로움에 눈물 한방울 흘러내리던 날도 있었어라. 2005.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