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의 막내 이모님의 큰아들이 뒤늦게 결혼을 한다고 해서
격주제로 토요일 근무제로 바뀐 남편은 오늘은 쉬는 토요일인데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잠시 회사에 다녀오고
아이들은 둘째 넷째 토요일은 학교에 가지 않고 자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되어서
11시 50분쯤에 집을 나섰다.
서울 잠실의 교통회관에서 1시 30분이 예식 시간이라니 충분히 대어 갈 수 있다고 여기며.
웬걸 도로위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잠실 근처는 교통경찰들이 나와서 수신호를 연방
보내는 데도 도로 위에서만 시간이 자꾸 흘러간다.
나중에 알고보니 잠실운동장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란다.
마음은 조바심을 치고, 거리의 사람들은 올 들어 최악이라는 뿌연 황사 현상 때문에
마스크를 한 사람, 손수건을 두른 사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오늘 같은 날은 집안에 콕 박혀 있는 것이 최선책일 것 같다.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고, 우리처럼 흰색의 차는 잘 모르겠는데,
검은색의 차들은 모두 뿌옇게 먼지가 앉아 있다.
그러다 시간은 이미 예식 시간을 지나쳐 버리고 있다.
그 시간에 우리는 근처의 석촌호수 옆을 지나고 있다.
"야, 석촌호수다. 저쪽이 롯데 월드다."
나머지 식구들이 롯데 월드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예전 일들을 떠올린다. 누구와도 왔고, 또 누구와도 왔던 석촌 호수.
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개발을 하느라고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황량한 벌판 위에 누워 있던 석촌호수. 그 호수가 이 봄날에 벚꽃, 목련, 개나리로 뒤덮여 뿌연 속에서도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예식이 이미 끝난 후에 도착하여 신랑,신부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식권 한장씩을 받아 들고 식당으로 갔다.
우리 아이들은 뷔페인 줄 알고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왔으나, 아쉽게도 한식당이다.
오래전 그날, 직장의 한 언니가 이곳 교통회관에서 결혼하던 날, 가수 겸 라디오 디제이도 겸하는
이*림 씨가 결혼을 했다. 그때 신부가 퍽 고왔던 것을 기억하고, 원래 말이 많고, 너무 잘하면,
다변에 달변이면 거부감을 갖고 바라보는 나는 이*림 씨가 별로였다. 무슨 근거인지 여전히 잘난 척을 하며 결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들으니 이혼을 했다고 한다. 요즘은 이혼했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서 예전만큼 놀라지 않고 듣게 된다. 아, 그래? 하고, 심드렁하게.
우리 시댁 식구들은 출석률이 95%였다. 육 남매가 가족동반 내지는 부부동반으로 아주 양호한 출석률이어서 한 곳에 다 모여 앉지 못하고 일부는 다른 곳에 앉아야 했다. 우리 부부는 큰형님네와 합석했다. 둘째 형님네는 다른 곳에, 부모님은 이모님들과, 나머지 식구는 한자리에.
우리 아들래미들은 여전한 식탐을 과시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감탄사를 연발케 했다. 각자 갈비찜 한 접시씩 추가시켜서 뜯더니 이모님 댁으로 옮겨 가서도 LA갈비를 어찌나 뜯어대던지 눈들을 동그랗게 만들고 입을 벌리며 우리 아이들만 쳐다보았다.
이모님 댁은 예전에 참 황량하던 곳인데, 석촌호수가 발달하고, 근처도 더불어 발달해서 뚜렷한 직업이 없던 막내 이모부님도 부자의 대열에 들어섰다. 약 100평의 대지를 갖고 단독주택 1채와 3층짜리 빌딩 하나를 가지고 계신데 재산이 30억이 넘어선단다. 바로 옆 송파에 집 한 채를 가지고 계시던 큰외삼촌은 그때는 그곳이 더 비싼 땅이어서 외삼촌이 더 부자였건만 지금은 뒤바뀌었다니 남편 말로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가만히 앉아서도 돈을 번단다.
그렇게 잘 아는데 우리는 왜 부자가 되지 아니할까.
한달에 한 번꼴로 송도로 가정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사업을 하고 계시는 바깥 권사님의 연이은 사업 번창으로 54평짜리 아파트에 또 다른 곳의 34평짜리 아파트와, 군데군데 땅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는 날은 나도 모르게 기분이 묘해진다. 빈부의 격차를 심하게 느끼고 온다. 빈부의 격차는 큰 것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 사소하게 차이나는 그것을 느끼고 올라치면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지 돌아오는 차 속의 모든 이들이 한숨을 한 번씩 내쉬며 건강한 것에 별 탈 없는 것에 감사하며 살자고 서로를 위로한다.
또다시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육남매 중에 가장 출세한 아들은 큰 아주버님이시다. 시골 분들은 특히나 돈보다는 명예를 따지는데, 얼마 전에 동네 입구에 현수막이 걸리고, 동네 회관에서 한턱을 크게 내셨으니 바쁘다는 핑계로 시골집에 자주 못 들른 불효를 백번 보상하고도 남는 효도였다. 그날 아버님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고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셨다고 하니 자식이 출세하는 것이 손가락 몇 번째에 꼽히는 효도라는 말도 있고 보면 그런 면에서 우리는 불효자다.
출세도 못하고, 부자도 아니 되고.
그저 성실하게만 살고 있다.
행복은 가장 평범한 속에 들어 있다고 하지만,
때로는 튀어보고도 싶은 것이 인생일 것이다.
뿌연 안개로 뒤덮인 도시를 빠져나가며 다들 한마디씩 한다.
서울은 복잡하고, 번잡하고, 매케해서 싫다고.
전국적으로 황사가 뒤덮혔다니 서울만 그러는 것은 아닐진대
유달리 서울만 뿌옇게 인식이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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