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의 안내 지도를 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도록 구불구불한 경사진 길을 올라
꽤 높은 곳에 위치한 성삼재휴게소에 가서 지리산을 잠깐 내려다보자 했다.
때로 너무 지나치다 싶게 운동을 좋아하던 남편이 달라졌다.
매일매일 어찌나 열심히 운동을 하던지 운동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에게선
고된 일을 마친 사람에게서 나는 단내가 나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런 일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 지금은 산을 멀리하고,
오랜 시간 걷는 것도 거부하는 사람이 되어 어안이 벙벙해질 때가 있다.
내가 알던 그 사람 어디 갔지?
하지만 그런 남편을 조르고 졸라 막상 산에 들면 나보다 세 배 정도 속도가 빨라
내 짧은 다리로 쫓아가느라 한여름 뙤약볕 밑의 견공처럼 헉헉거리게 된다.
고로 내겐 둘레길 걷기 회원들과 걷는 것보다 남편과의 산행이나 걷기가 훨씬 힘들다.
남편이 언제부터 오래 걷기와 산행을 싫어하게 되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몇 해 전 허리 아플 때부터였나 싶기도 하고,
더 되짚어보면 주말부부 시작하면서부터였나 싶기도 하다.
반복되던 일상의 습관이 그때부터 무너진 건가.
5월 초 연휴 며칠 동안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내게 스케줄을 짜보라고 해서
몇 코스 알아보았더니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것이냐고 눈을 크게 뜨며 기겁을 했다.
하여 많이 양보하고 조율하여 구례의 명소 몇 군데만 둘러보는 것으로 마음을 맞추었다.
많이 걷기 싫어하시는 분이 되셨으니 여기 성삼재휴게소에서 저기 저 노고단까지 갔다 오는 것도 당연히 싫다 하신다.
하~!!! 깊은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만날 여행을 나에게 끌려다니는 것처럼 다니지만 실은 체력은 나보다 월등하면서 말이다.
이곳에 올라오니 기온이 뚝 떨어져 산아래에서 땀 흘리며 벗었던 점퍼를 다시 걸치고도 오들오들 떨었다.
나무들은 아직도 겨울 내지는 초봄이다.
휴게소 한편에 있는 매화나무엔 이제 막 매화가 피어났다.
처음엔 벚꽃이 뒤늦게 핀 줄 알았지만 나 매화라고 향기를 폴폴 날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정말 매화여서 더 놀랐다.
아마도 몇 해 전 산수유꽃 보러 다녀갔던 산동면이겠지?
안내판 사진과 비슷하게 찍어보았다.
왼편부터 뒤에 만복대 앞에 고리봉, 그 뒤로 가운데 빼꼼히 삼봉산,
오른편으로 반야봉.
지리산을 내가 보았다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던 길은 브레이크 파열 될 수 있다고
1단 기어로 놓고 내려가라는 안내판이 중간중간 서 있는 심히 가파른 길이었다.
그 길에서 처음엔 아쉬운 마음이 지배적이었다가 한 굽이 두 굽이 돌아내려가는 중에 서서히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리고 이나마도 함께 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습자지에 물 번지듯이 차츰차츰 올라와
생글생글 미소를 다시 짓게 되고 다시 다정하고 상냥한 아내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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