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또 하루

또다시 농사꾼이 되어

by 눈부신햇살* 2023. 4. 3.

논산 시골집에 약도라지를 캐서 갈라 옮겨 심는 작업을 해야 된다고

언제부터 말이 나왔는데 이래저래 일이 생겨 뒤로 미뤄지다가 그만 싹이 나고 말았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싹이 난 약도라지는 그대로 두기로 하고,

땅을 놀릴 수 없으니(다른 집들은 그냥 묵히고 있는 묵정밭들도 있더구만...^^) 남은 빈 땅을 고르고

감당하기 힘든 잡초 때문에 비닐을 씌우고 새로 도라지 씨를 뿌릴 거라고 해서 거들러 갔다.

어쩌다 보니 자꾸 우리 부부만 불려 가는 느낌이다.

 

주중엔 회사 다니고, 주말엔 농사짓는 시동생에게

나는 장난스럽게 일 중독이냐고 물어보게 되었다.

시동생네 동서는 두 딸과 함께 한 달가량 유럽여행을 떠났다.

파리,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국을 돌고 올 거라는데

두 딸은 이미 취업이 되었고, 일 시작할 때까지 남은 기간이 있으니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다. 

나는 그저 부러워서 부럽다는 말만 연신하고 있다.

그런 내게 동서가 말했다.

"형님, 그러니까 딸을 낳았어야지요~"

 

묵정밭에 광대나물이 쫘악 깔려 있었다.

너무 예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느 집 울타리 밑에는 수선화와 함께 보랏빛 제비꽃이 화초처럼 피어 있었다.

심어 놓은 수선화는 찍지 않고, 저절로 돋아난 제비꽃만 찍는 나.

 

시골집 창고 앞에는 머위가 돋아나 자라나고 있었다.

머위 캐고, 또 취나물 캐서 데치고 있었더니 어머님이 유채 다듬어 놓은 것과

작은 시누이가 사다가 육개장 끓이고 남은 얼갈이배추를 섞어서 버무리라고 하신다.

남자들은 농사일로 바쁘고, 나는 주방일로 바쁘다.

잠시도 엉덩이 붙이고 앉을 시간이 없네.

 

*** 어제 저녁 세계테마기행 일본 편을 보는데 우리는 먹지 않는

저 머위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를 튀겨 먹는 것이었다.

신기하다 생각하며 보자니 <리틀 포레스트> 일본 영화에서

주인공이 튀겨 먹었던 것도 뒤늦게 떠올랐다. (4월 5일 덧붙임)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이 드니 잘 먹지 않게 되는 삼겹살을 오랜만에 구워 먹자고 해서 

장 보러 가는 길에 보게 되는 일몰. 동그란 해가 참 예쁘다.

관촉사 앞에도 벚꽃이 만발했다.

오래전 딸기 농사 지으실 때 그때도 딸기일 거들러 왔다가 관촉사 앞으로 벚꽃놀이 왔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가 하마 25년 전쯤 되나 보다.

 

다음날 마치 바닷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바람이 억세게 불었다.

그래도 봄볕은 따끔따끔할 정도로 뜨겁게 내리쬐었다.

그 바람과 그 햇살 아래 어머님과 둘이 평상에 앉아서

이제 막 돋아난 부추와 쪽파를 다듬었다.

 

밭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나가 보았다.

지난 가을날에 여럿이 모여 심어 놓았던 마늘밭의 풀이 거슬려 뽑다 보니 

저절로 숨이 가빠졌다. 힘들고만~잉!

 

쭈그려 앉아 긴 밭과 옆 세 개의 고랑에 돋아난 풀을 뽑으며 생각한다.

내가 이런 밭의 풀을 뽑고 있을 줄이야.

그래도 어린 날에 시골에 살았던 경험이 이런 일을 완전 낯설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또 한 소리 들었다. 완전 시골 체질이야!

 

육십이 가까운 이 나이에도 더러 감성이 소녀 같다는 소리도 듣고,

여성스러운 성격이라는 말도 듣는 형이니

전혀 기대감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무얼 적극적으로 하고 있으면

신기해서 하는 소리인가 본데 때로 나도 나에게 놀란다.

내가 저런 밭일을 아주 싫어하지 않고, 은근히 즐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에.

 

 

 

'하루 또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해 나물 캤던 날  (0) 2023.04.10
봄날, 우리 집에 피어난 꽃들  (24) 2023.04.10
3월은 바쁜 달  (26) 2023.03.30
봄이 오는 길  (36) 2023.02.27
2월의 서울에서  (0) 2023.02.19

댓글